대애틀랜타지역한인교회협의회(회장 김영환 목사) 주최 2011 복음화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를 주제로 하는 올해 복음화대회 강사로는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가 나선다. 이에 본지는 올해 강사인 홍정길 목사를 조명해 본다.

故옥한흠•하용조, 이동원 목사와 함께했던 '복음주의 4인방'
홍정길 목사는 故옥한흠•하용조, 이동원 목사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린다. 이들은 소수 목회자 중심이던 한국 교회에 평신도 제자훈련 바람을 일으켰고 선교와 구제사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다. 하지만 교계 정치는 멀리하며 많은 한국 목회자들의 모범이 됐다.

이 중 홍정길 목사는 매년 2만 5천명의 한인 기독유학생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 ‘코스타’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밀알학교와 장애인 고용 재활가게 굿윌스토어를 세웠다. 또 오직 성경말씀만 전하는 ‘강해 설교’만으로 성도들의 가슴을 적신 명설교가로도 알려져 있다.

나눔의 목회자, 모든 것을 내 놓다
6.25 전쟁 이후 받은 재물의 축복을 교회를 세우고 고아원을 짓는데 썼던 홍순호 장로(1915∼95•전남 함평교회 장로)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 동기들에게 “그 친구가 목사 됐어?”란 소릴 들을 정도로 반항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켰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선교캠프장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을 만난 그는 67년에 총신대에 진학, 건국대 교목을 거쳐 75년, 남서울교회를 개척했다.

남서울교회는 교회 예산의 63%까지 장학사업과 빈민구제, 해외선교, 기독교 교육 등에 사용했으며 성도수 3천명에 이르는 중형교회로 발전했다. 그러나 홍 목사는 "(밀알)학교가 너를 필요로 하지 않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렵사리 키운 중견교회를 선뜻 내놓았다.

97년 문을 연 밀알학교는 남서울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홍 목사는 남서울교회를 떠나올 때 받았던 퇴직금을 모두 학교 건축비로 내놓았으며 공정한 운영을 위해 학교를 밀알재단에 넘겼다.

밀알학교는 정서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유치부와 초등부, 중학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총 200명 정도의 어린이가 공부하고 있다. 남서울은혜교회와 밀알학교는 매주일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이 함께 어울려 예배를 드린다. '건강하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낮은 데 있거나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함께 사는 세상' 홍정길 목사가 만들고 있는, 바라는 세상이다.

더디 가더라도 사람을 섬기는 목사
1996년 한 권의 책이 출판됐다. 책의 제목은 <내가 본 홍정길 목사>. 이 책은 남서울교회에서 10년간을 함께 했던 강경민 목사가 지었다. 그는 홍 목사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섬기는 목회’라고 강조했다.

목회를 하다 보면 ‘효율성’과 ‘사람 중심성’이 종종 부딪칠 수 밖에 없다. 홍정길 목사는 ‘평신도 중심의 사역’을 지향한다. 평신도가 교역자의 도움 없이 신앙의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홍 목사의 목양적 신념이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 내 각종 위원회의 대표를 평신도들이 맡기도 한다. 평신도에게 리더쉽을 과감히 이양하는 것이다.

이때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인격적, 신앙적 성숙만으로 행정은 원활히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부교역자들이 그러한 일들을 맡아서 한다. 그러나 홍 목사는 효율적인 것보다 평신도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참여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게 된다.

홍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남서울은혜교회는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사례금이 동일하다. 부교역자에게도 안식년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런 홍 목사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홍 목사는 “나는 대교회를 만들기 위해 혼자서 교회를 설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곁에 오래도록 붙잡아 두고 싶지 않습니다. 대교회 하나를 세우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 것보다 좋은 교회들이 여기저기에 세워지는 것이 낫습니다. 강 목사는 교회 설립의 은사가 있으니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개척을 하도록 합시다. 힘껏 돕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내 놓았다.

이 면담이 후 1년여가 지나 일산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저자 강경민 목사가 담임목사가 된 것이다. 교단 소속도 행정도 모두 독립적이다. 다만 예산의 10% 정도를 합하여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해 보자는 게 홍 목사의 소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