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염려나 걱정이나 근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상한 마음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염려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고, 어쩔 수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보다는 걱정과 근심으로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일생동안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죠지 뮬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고,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의미 있는 표현입니다. 근심과 걱정, 염려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근심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근심하는 마음이 그분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염려와 걱정은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항상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근심의 결론이 자살이나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우리말성경)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음의 근심을 이겨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에게 사명과 목적과 의미를 주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창조하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대해서 논쟁하거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언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창 1:1, 우리말성경)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마음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아도, 사방이 막혀 있어도, 길을 내시고 구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근심은 근심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근심 대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의 신실하심을 붙잡으십시오.

어니 J. 젤린스키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퍼센트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이분의 글에 따르면 걱정이나 근심, 염려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변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행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오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제게 주소서, 그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직면하여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제게 주십시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차이를 헤아려 알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십시오”는 기도문처럼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벧전 5:7, 표준새번역)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한 주간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