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합감리교회에서 매년 한 번씩 지키는 ‘평신도 주일’(Laity Sunday)입니다. 이 주일에는 목회자가 평신도의 자리에 서고 평신도들께서 목회자의 자리에 섭니다. 이 특별한 예배를 통해 평신도 주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성직자(clergy)와 평신도(laity)가 서로 다른 소명을 받았고, 따라서 반열(class)도 다르다는 가톨릭 교회의 신학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같은 반열에 있으며 동일한 소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여받은 기능과 직책이 다를 뿐입니다.
영어의 Laity라는 말은 ‘라오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누군가가 laity를 번역하면서 ‘평신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서 ‘평’(平)이라는 말이 붙으면 깎아내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평신도’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특(特)신도’ 혹은 ‘별(別)신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특별한 신도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목사, 전도사 혹은 선교사가 그런 이들이라고 믿습니다. ‘평신도’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보다는 못한, 혹은 그들보다 낮은 소명과 책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개신교 신학의 중심에 있는 ‘만인제사장직의 교리’는 이 같은 가톨릭식의 믿음을 반대합니다. 개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믿는 사람들이 동등하며,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의 소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회에는 ‘고해성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직자를 통하지 않아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신교회는 목사만을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이며,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위해 섬겨야 하는 제사장이라고 믿습니다.
진실이 이러한데, 아직도 자신을 ‘특신도’인 것처럼 선전하고 ‘평신도’ 위에 군림하려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군림하기 위해서 성도들의 귀와 눈과 입을 막고 철저하게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만들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숨겨진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눈 질끈 감고 그 목회자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을 믿고 목회자들은 목을 곧게 세우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평신도 할테니, 당신들이나 특신도 하시오. 당신들의 특권을 인정해 줄테니, 우리는 적당히 믿고 살도록 내버려 두시오.”라고 생각하며 영적인 결탁을 하는 성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같은 불순한 결탁 속에서 교회는 타락하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부패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이 같은 불의한 결탁을 깨뜨리고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자는 다짐과 결단을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어나는 데 있습니다. ‘평신도’는 없습니다. 모두가 ‘특신도’요 ‘별신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2011년 10월 16일)
연합감리교회는 성직자(clergy)와 평신도(laity)가 서로 다른 소명을 받았고, 따라서 반열(class)도 다르다는 가톨릭 교회의 신학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같은 반열에 있으며 동일한 소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여받은 기능과 직책이 다를 뿐입니다.
영어의 Laity라는 말은 ‘라오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누군가가 laity를 번역하면서 ‘평신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서 ‘평’(平)이라는 말이 붙으면 깎아내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평신도’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특(特)신도’ 혹은 ‘별(別)신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특별한 신도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목사, 전도사 혹은 선교사가 그런 이들이라고 믿습니다. ‘평신도’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보다는 못한, 혹은 그들보다 낮은 소명과 책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개신교 신학의 중심에 있는 ‘만인제사장직의 교리’는 이 같은 가톨릭식의 믿음을 반대합니다. 개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믿는 사람들이 동등하며,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의 소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회에는 ‘고해성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직자를 통하지 않아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신교회는 목사만을 제사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해 제사장이며,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위해 섬겨야 하는 제사장이라고 믿습니다.
진실이 이러한데, 아직도 자신을 ‘특신도’인 것처럼 선전하고 ‘평신도’ 위에 군림하려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군림하기 위해서 성도들의 귀와 눈과 입을 막고 철저하게 목회자에게 의존하도록 만들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숨겨진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눈 질끈 감고 그 목회자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을 믿고 목회자들은 목을 곧게 세우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평신도 할테니, 당신들이나 특신도 하시오. 당신들의 특권을 인정해 줄테니, 우리는 적당히 믿고 살도록 내버려 두시오.”라고 생각하며 영적인 결탁을 하는 성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같은 불순한 결탁 속에서 교회는 타락하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부패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이 같은 불의한 결탁을 깨뜨리고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자는 다짐과 결단을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어나는 데 있습니다. ‘평신도’는 없습니다. 모두가 ‘특신도’요 ‘별신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2011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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