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무신론자, 신을 믿다”

2004년 12월 9일자 AP통신은 이같은 머리기사를 타전했다. 기사는 이어졌다. “반세기 넘도록 무신론의 대표적 옹호자로 활동한 영국의 철학 교수가 마음을 바꿨다. 그는 오늘 공개된 비디오에서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 신을 믿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즉시 언론의 일대 사건이 돼 전세계 방송과 신문,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보도되고 관련 논평이 이어졌다. 기사의 주인공은 30권 넘는 철학서를 집필하며 반세기 동안 무신론 의제를 설정해 온 앤터니 플루(Antony Flew) 교수다.

몇년 전 이어령 박사가 세례를 받은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만으로 매스컴에 ‘보도’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만큼 플루의 회심은 ‘뉴스’였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무신론자들의 교주’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회심에 비견될 만하다.

당시 AP 기사에 동료 무신론자들의 반응은 히스테릭했다. 무신론 성향의 한 웹사이트는 ‘참된 신앙’에서 떨어져 나간 플루에 관한 최신 소식을 매달 보도할 통신원을 임명했고, 자유사상을 표방하는 블로거들은 그를 향한 공허한 모욕과 유치한 풍자만화를 블로그에 실었다. 종교재판과 마녀 화형을 욕하던 그들이 ‘이단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의 회심은 왜 이렇게 이런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왔을까? 플루는 단지 신에 대한 비판을 즐기거나 재탕을 일삼는 다른 무신론자들과 달리, ‘무신론’을 체계적으로 입증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신학과 위증성>, <신과 철학>, <무신론 추정>에서 그는 종교적 진술이 어떻게 의미있는 주장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무소부재하고 전능한 영(靈)이라는 신 개념의 정합성이 확립되기 전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준거의 틀을 완전히 새로 짰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의 본질을 통째로 바꿔놨다.

한 마디로 “신의 존재를 입증할 책임이 유신론에 있으며 무신론이 기본 입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앤터니 플루가 “신의 부재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정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이어령 박사와 같은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현상’도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의 순례’를 통해 신을 발견했다.

플루는 간단히 말해 ‘현대 과학으로 드러난 세계상’ 때문에 신을 믿게 됐다고 답한다. 그는 이제 우주가 무한한 지성에 의해 존재하게 됐다고 믿고, 생명과 생식이 신적 근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는 어떤 새로운 현상이나 논증 때문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꾸준히 사고체계가 움직였던 결과이자 자연의 증거를 계속 평가한 결과다.

그는 과학이 탐구하는 세 가지 영역, 즉 ①자연법칙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②생명현상이 어떻게 무생물에서 생겨났을까 ③물리적인 것 전부를 뜻하는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등을 통해 무신론을 비판하면서 몸이 없고, 완벽한 작인(作因)이면서 시간 바깥에 있는, 정합성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신을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그는 ①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등 자연법칙들은 합목적적으로 설계자를 전제하는 등 신을 향하고 있다 ②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목표지향적이고 자기복제하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만족스러운 대안은 무한한 지성을 갖춘 정신 하나뿐이다 ③우주가 원인 없이 존재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지만 신이 원인 없이 존재할 가능성은 그보다 높다고 각각 설명한다.

이처럼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그의 회심은 이 책 <존재하는 신(There is a God·청림출판)>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책 출간 3년 뒤인 2010년 4월 ‘소천’했다. 그는 감리교 목회자의 아들이었고, 결국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 C.S.루이스가 의장을 맡은 옥스퍼드대학 소크라테스클럽에서 무신론 철학논문 <신학과 위증성>을 발표하는 등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자신의 회심이 ‘고령의 나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의심하는) 이들은 내세의 부재를 다룬 내 저작들도, 이 주제에 대한 내 견해도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50년 넘도록 나는 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내세의 존재도 부인해 왔다. 이 부분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60년 넘도록 이어진 그의 무신론 활동은, 유신론의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기도 했다. ‘신을 증명해 보라’는 그의 외침에 유신론 과학자·철학자들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시절 ‘신을 부인하는 자리’로 그를 내몬 것도 그의 ‘신에 대한 탐구’였다. 물론, 그가 열다섯에 무신론을 받아들이게 된 근거들은 분명 부적절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 책의 부제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무신론자는 어떻게 마음을 바꾸었나(How the World’s Most Notorious Atheist Changed His Mind)’이다.

진정한 대가는, 긴 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뤄낸 성과라도 잘못임을 깨달았다면 과감히 내려놓고 진리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법이다. 그러나, 철학과 논리 없이 감정적 비난과 교조주의로 가득 찬 최근의 무신론자들에게 이러한 용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