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비극

지상의 낙원이라는 노르웨이에서 지난 7월(2011년) 브레이빅이라는 노르웨이 청년이 정부 청사에 폭탄을 터뜨리고, 경찰복으로 변장한 후 수련회 중인 청년들을 닥치는 대로 조준 사격하여 80여명의 무죄한 사람들을 살육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브레이빅은 정신병자가 아니고, 극우주의자요 인종차별주의자며,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이슬람을 증오한 극단적 기독교도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였다. 내 종교, 내 민족, 내 혈통만이 제일이고, 타 종교, 타 민족, 타 문화의 생존권을 부인하는 이런 행위는 다문화 사회에서 극히 위험한 사고일 수밖에 없다. 이슬람을 박멸하기 위해 진군했던 십자군을 연상케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십자군의 기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태어난 종교적 인물 마호메트가 다신론 사회에서 일신론(一神論)을 주장하자, 많은 박해를 받게 된다.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도망한 사건이 622년에 있었는데, 이 사건을 헤지라(Hejira)라 하여 이슬람은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마호멧은 전열을 가다듬고 전투를 벌여 다시 메카로 돌아온 후 알라 신을 섬기는 이슬람을 무력으로 선포하기 시작한다. 파죽지세로 그 세력을 넓히면서 팔레스타인까지 점령하더니 드디어 638년 성도 예루살렘이 그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예루살렘 여러 곳에 있던 성당에 걸린 십자가가 내려지고, 이슬람의 상징인 반달 모양의 표식이 대신 내 걸렸다. 초창기에는 기독교도 성지순례자들의 여행을 방관하던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들은 차차 순례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재물을 빼앗고, 노예로 팔기도 하며, 부녀자들을 성폭행하면서 온갖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방교회(희랍정교회)는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에 구원의 호소를 시작하였다. 급기야 1095년 불란서 끌레르몽에서 모인 교회 회의에서 교황 우르반 2세는 성도(聖都)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강연을 할 때 군중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원하신다.”(Deus volt)라 합창하면서 예루살렘을 탈환할 십자군이 형성되었다. 교황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십자군에 지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생 짓는 모든 죄를 사면하는 대사면령(Plenary Indulgence)을 선언했다. 여기서 저 악명 높은 면죄부 제도가 시작된다. 그러나 십자군은 정규 군인들이 아니었고, 농부, 상인, 노동자 등 오합지졸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모여 형성된 군대로 제대로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였다.

-성지탈환

교황의 호소에 따라 구라파 각지에서 구름떼처럼 모인 십자군 수십만 명이 성도를 향해 진군해 나갔다. 구라파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수천리길을 행군하면서 무슬림 군인은 말할 것 없고, 일반 백성까지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급기야 1099년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이슬람과 기독교의 반목이 비롯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십자군들이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성전수비기사단(Templers Knights)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열을 가다듬은 회교군이 다시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제2차 십자군이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진군했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계속해 여덟 차례 성지탈환을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끝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이 그곳을 점령할 때까지 1400여년을 이슬람의 수중에 놓여 있었다. 중세 십자군이 남긴 교훈은 십자가는 땅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획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UN 총회의 결의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예루살렘은 비로소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들어갔지만 예루살렘 동부는 여전히 무슬림 팔레스타인들의 수중에 놓여 있어서 반쪽 회복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판 십자군

십자군은 항상 십자가 군기를 높이 들고 십자가를 수놓은 전투복을 입고 전격했다. 십자가 기치 아래 살육과 강탈을 자행한 것이다. 십자가 가는 곳에 평화가 깃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이 자행되었다. 현대판 십자군은 미국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KKK(Ku Klux Klan)라 말 할 수 있다. KKK는 미국 땅에서 로마 가톨릭, 유태인, 그리고 유색인종을 다 몰아내고 오직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s) 즉 백인, 개신교도들만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얼굴을 가린 긴 삼각 마름모꼴의 고깔모자를 쓰고 십자가를 들고 흑인, 유태인, 로마 가톨릭교도 집을 향해 나아가, 그곳에 십자가를 꽂고 십자가에 불을 붙여 태우는 행위를 한다.

왜곡된 기독교 신앙이 얼마나 곁길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모형이다. 자살 폭탄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알카에다, 탈레반 무리들과 다를 바 없다. 십자가는 무차별의 상징이다. 십자가 가는 곳에 모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장벽이 허물어진다. 우리끼리만의 사회는 원시 부족사회의 모습이다. 21세기 지구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이제 우리끼리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우리는 이제 이질문화, 이질인종, 이질요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찍이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종족이나 문화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오랜 역사를 지녀온 대학생선교회인 CCC(Campus Crusade for Christ)가 그 명칭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crusade 즉 십자군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십자군이라는 용어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끼리의 십자가는 진정한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그들이 만든 다른 십자가 일 뿐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관계 화해의 상징이다. 기독교는 생명을 살리는 종교이지, 죽이는 종교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히 왜곡된 “브레이빅 신념”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드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