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나성금란교회 담임 윤선식 목사는 새벽강단에서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찍 일어나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침묵의 영성을 가지셨다.”라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끊임없는 묵상과 경건생활을 통해서 마치 가을의 햇빛으로 곡식이 영글어가듯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의 영성을 닮아서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새벽기도에 대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벽을 통해서 자신이 정립되는 것을 많이 느낀다.”라며 “이민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 침묵의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필터가 필요하다. 그것이 새벽기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침묵의 영성 <본문:사53:7-9>

예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던 영성은 침묵이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일찍 일어나서 묵상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없이 기도하시고 은밀하게 섬기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소리 지르고 원망하고 불평할 텐데 그분은 입을 꼭 다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고 그분의 생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어서 말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침묵의 영성을 배워야합니다. 이 침묵의 영성은 고상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정서불안에 의한 장애가 급격히 늘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이 우릴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잠시도 침묵하지 못하고 심지어 손가락 하나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다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침묵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영성인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도 그렇습니다. 침묵하고 잠잠한 영성이 아닌 소리를 지르고 핏대를 올리고 삽니다. 그래야 내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까지 와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영성은 침묵입니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엄청난 사건을 치루시면서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오셨는데 자랑치 아니하셨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런 엄청난 희생을 하셨는데도 죄인인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셨음에도 자기를 드러 내거나 떠벌리거나 자랑치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떠들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62편1절에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또 2절에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요동할 필요가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위기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위기 앞에서 불안해하며 소리 지르는가 입니다. 모세는 침묵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너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떠들지 않고 요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침묵의 영성입니다. 이 영성이 곧 예수님의 영성입니다. 이 예수님의 영성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침묵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영성입니다. 침묵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삶입니다. 진정 순종하는 사람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 잘하고 찬송 잘 부르고 아는 것이 많아서 말이 많은 사람이 신앙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의 영성은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은 더욱 빛나고 인격은 고상하게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절대순종과 신뢰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산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삶입니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죽은 자요 세상 앞에 죽은 자였습니다. 구약의 요셉의 삶은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버림받은 삶이었습니다. 형제와 민족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단 한마디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총리대신이 된 후에도 떠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할 때도 침묵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예수님은 동 트기 전에 항상 침묵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침묵의 삶이셨습니다. 곤욕 속에서도 치욕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수치와 부끄러움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순종 절대 믿음을 가지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 사랑을 있으셨기에 침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침묵의 영성은 하나님의 친밀한 교재를 가능케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철이 든다고 합니다. 이것은 농사를 짓는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농부가 오랜 세월을 짓다가 보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하늘만 봐도 천기만 봐도 무엇을 할지 다 알게 됩니다. 스스로 그때와 시기를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이렇듯 철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끊임없는 묵상과 경건생활을 통해서 침묵 속에서 마치 가을의 햇빛으로 곡식이 영글어가듯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의 영성을 닮아서 열매를 맺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