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질문을 하면서

나는 이제 향, 특히 유향에 대한 나의 단상을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몇 가지 질문, 그러나 동일한 한 가지 질문이 들게 된다. 말씀 중심의 개신교인들은 냄새를 거부하며 살고 있단 말인가? 나는 개신교인들 중에 향수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여성 집사와 권사님들이 있는지 묻고 싶다. 교회의 사모님들은 절대로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공연장, 오페라 또는 컨설트 홀에서는 너무나 많은 향수를 뿌리고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 곳도 있지만 교회에 올 때는 향수를 뿌리지 말고 오라고 주보에 광고하는 교회가 있는지 알고 싶다. 사실상 나는 향수를 자주 사용한다. 남자이지만 나는 향수를 차에 싣고 다닌다. 그리고 공식적인 모임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들어가기 전에 으레 향수를 뿌린다. 그것이 예의이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신앙에서 감각적인 것을 배제하고 거부하는, 말씀을 중요시 여기시는 목사님들 중에는 정말로 향수를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으시는지 묻고 싶다.

흔희 집에는 방향초를 켜는 집이 많다. 만찬에 손님을 초대하고 식탁 위에 방향 초를 한 번도 켜지 않는 개신교 가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섬유유연제라고 하는 fabric softner를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고 세탁기를 사용하는 개신교 성도들이 있는 지 묻고 싶다. 섬유 유연제는 옷에 베어 있는 퀴퀴한 냄새를 빼주는 탈취효과뿐만 아니라 향긋한 냄새를 더해주는 효과도 있다. 위에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개신교 신도들이 얼마나 될까?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에 개신교는 감각을 몰아냈다. 예배에서 감각적인 요소를 배제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삶 속에서 후감각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후감각의 매체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삶 속에서 우리들은 후각을 자극하고 그것을 통하여 삶의 운치와 유익함을 가져오는 수도 없이 많은 향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감각이 하느님을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매개체가 될 수는 없단 말인가? 이미 성서적 전통과 교회의 전통은 그것을 사용하여 온 것을 말해 준다. 그 전통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회복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선 글에서 일부 중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향을 사용한 역사를 성서 속에서, 교회사 속에서 살펴보고 실제적인 사용의 실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향 사용의 역사

유향은 언제부터 사용되어 졌을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와 더불어 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대 인간들은 역사 속에서 나무와 풀을 태워 향기와 연기를 만들었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생활과 종교생활에 유익함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르도투스(Herodotus)는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고 유다교에서 널리 유향이 사용되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동양에서도 향은 역사 속에서 사용되었다.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유다교에서는 유향을 사용한 역사는 출애굽기 30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분향단을 만들도록 명령하셨다. 출애굽기(30장, 37장)를 보면 하느님은 모세에게 향을 피우는 단인 “분향단(焚香壇:an altar of acacia wood for burning incense)”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을 주신다. 분향단은 향을 태우는 곳, 향을 피워서 드리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성소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금등대가 있고 맞은편 오른쪽에는 떡상이 있고 가운데 중앙. 지성소 휘장 앞에는 분향단이 놓여져 있었다.

“그 분향단을 증거궤를 가리는 휘장 앞, 내가 너를 만나 대화를 나눌 곳, 증거판을 덮는 속죄판 앞에 두어라.” (출30:06)

그 이후 구약성서에는 희생제를 드릴 때에,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 향을 사용하였음을 자주 언급한다. 유향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 중에 하나였다.(민수기7:13-17)

신약성서로 오면서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가 제대에서 분향했음을 말해준다.(루가1:10) 예수님의 탄생을 동방박사들이 축하할 때에 세 가지 선물 중에 하나가 유향이었고 또 다른 하나인 몰약 역시 후각적인 선물이었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8:3-5)에서 요한은 하늘나라의 예배에서도 유향이 사용되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우주적 종말의 사건이 있고, 하늘나라에서도 유향이 예배에 사용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성전에서 분향하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자연스럽게 유향의 전통을 알고 그 환경 속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다른 한 편에서는 향과 향수의 사용이 거부되었다. 왜냐하면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향과 향수를 이교도의 제의로 인식하고 게으름과 쾌락을 부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향수의 사용을 금지시겼다. 향수는 로마의 우상숭배와 관련돼 있었고, 향수로 꾸며낸 가짜 기질과 성격은 관능주의를 불러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향을 배제시킨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유일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후감을 억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후각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에 교회의 예배는 로마의 공회당에서 드려졌고 그곳에 있던 향로를 사용하여 다시 후감각을 회복하였다. 시리아의 성인이었던 에프렘(St. Ephrem, cc 306-373)은 신의 지식이 어떻게 인식되고 지각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은 어디서든지 인간에게 감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주장하였고,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감각인 시각, 청각과 더불어 후각에 권위를 부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가 다시 성서적 전통의 향, 후감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유향의 사용이 확인된 초대교회의 기록으로는 약 5세기 경에 쓰여진 성야고보와 성 마르코의 전례(Liturgies of Ss. James and Mark)에 나타난다. 7세기의 로마예식서(a Roman Ordo)에는 주교가 제단으로 순행할 때 그리고 성 금요일에 사용되어졌다고 언급을 한다. 세기를 내려오면서 유향은 교회에서 점점 더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미사에서 복음 낭독을 할 때에 유향이 사용되었다. 11세기에는 성찬예물을 준비하고 봉헌할 때에, 12세기에는 입당할 때에, 13세기 경에는 매일 아침(Lauds)과 저녁기도(Vespers)에서 성 즈가리야 송가(Nunc dimittis)와 성모마리아 송가(Magnificat)를 할 때, 14세기 경에는 성체와 보혈을 거양(성찬기도 중 마지막 부분인 송영을 할 때 성체와 보혈을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을 할 때에, 그리고 그 이후 집전성직자와 전례 참여성직자에게 분향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시기에 개신교회는 향의 사용을 금지시겼으며 후각과 다른 감각의 관능적 가능성을 비난하였다. 그래서 루터교, 캘빈과 쯔빙글리의 종교개혁에서도 심지어 성공회에서도 향의 사용이 금지되었었다. 일부 과격한 개신교, 특히 청교도에서는 향수와 사향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어둡고 흐리게 하고, 하느님과의 영적 교류를 촉진하기 보다는 죄악을 조장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천주교의 성 익냐시오 로욜라의 예수회 수사들을 통하여 향의 후감각이 회복되었다. 제프리 칩스 스미스에 의하면 익냐시오는 최초의 주요 감각론자로서, 우리가 하느님을 이해하고 경험하고자 할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의 능력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성공회에서는 19세기의 옥스퍼드 운동을 통하여 유향의 사용이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유향의 사용은 점점 확대되어져 오고 그 의미가 추가되기도 하였고 그런가하면 개신교의 종교개혁 이후 19세기 옥스퍼드 운동 전까지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성공회 안에서도 교회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향의 사용은 반드시 이렇다 할 규정을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유향은 교회의 전례에 따라,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변형으로서 목적에 맞게 사용되면 그만인 것이다.

언제 유향을 사용할까?

교회에서 사용하는 유향은 속죄와 정화(pur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그리고 기도의 상징(devotion)이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다음의 경우에 유향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경우이고 필요에 따라 유향의 사용은 결정될 수 있다. 다음은 성공회를 비롯한 전통적인 전례를 지키는 천주교, 동방정교회, 루터교회 등에서 전례 중에 유향을 사용하는 때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변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 유향의 사용은 교회의 형편에 따라, 전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시도하며 사용할 수 있다.

1)성찬예배 중에: 순행, 입당, 복음낭독, 성찬예물 봉헌, 성찬기도 중에
2)매일 아침기도, 저녁기도 중에 성 즈가리야 송가와 성모마리아 송가를 할 때에
3) 순행할 때에
4) 성물을 축성할 때에, 예를 들면 성지주일(종려주일)에 성지를 축성할 때에
5) 장례식에서 시신이 성당에 도착하면 관 앞에서 유향이 순행을 인도하고, 사도예절(죄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을 할 때에 관에 분향을 한다. 이는 성령의 전이었던 몸을 거룩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죽은 자의 기도가 그리고 죽은 자의 죄를 용서를 비는 기도가 하느님께 올라가도록 하는 상징이다.
6) 사람들에게, 특히 집전자와 성직자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성공회에서는 전통적인 전례를 중요시 하는 교회, 예를 들면 대한성공회와 같은 고교회(High Church, Anglo_Catholic Church)에서는 유향을 주일마다 자주 사용한다. 지금도 한국 성공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매주 유향을 사용한다. 그런데 같은 성공회 안에서도 저교회(Low Church; Evangelical, 복음적인 경향이 강한 성공회)에서는 유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성공회 고교회 전통 속에서 자란 나는 유향을 좋아하지만 매 주일 마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탄절, 성지(종려)주일, 부활절 등 장엄전례를 드릴 때는 반드시 사용한다. 그리고 일 년에 몇 번은 작은 그릇에 향을 피워 냄새와 연기를 경험토록 한다. 다시 말하여 교회의 전례에 따라, 또는 필요에 따라 변화있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향을 언제 사용하였을까? 우리 선조들은 향을 가까이에 두고 삶의 숨결을 골랐다. ‘우리 선조들은 제수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차를 마실 때, 거문고를 탈 때, 맑고 운치있는 일에 늘 향을 사용하였다’고 박희준은 말한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아침이면 옥유향을 달이 뜨는 밤이면 반월향을, 차를 마실 대는 자루향을 피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우리 선조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닐 때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향을 사용하여 삶의 향기를 드높였다. 도륭(屠隆)의 고반여사(考槃餘事)에는 다음과 같이 향을 사용한 때를 말해 준다.

“고결한 학자들이 진리와 종교를 논할 때, 한 줌의 향을 피우면 심혼이 자못 맑아지고 마음이 흐믓하리라. 깊은 밤 사경에 이르러 달이 홀로 높이 뜨고, 차갑고 쌀쌀한 기운이 피부에 스며들며, 인간 세상을 멀리할 것 같은 맑고 엄숙한 기운이 천지 사이에 가득찰 대, 사람의 마음을 온갖 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 저절로 휘파람을 불게 하는 것이 바로 향이다.”

따라서 향을 언제 사용할 것인가는 사용하는 자의 유익함을 위하여 자유롭게 공동체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