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잠룡'들이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토론회를 갖고 뜨거운 공방전을 벌였다.
공화당 대선주자 토론회는 지난달 아이오와주에 이어 세번째이지만 이날 토론회에 대한 유권자와 언론의 관심은 전과 달랐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3천700만명)가 많고 대통령 선거인단(55명)도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토론회인데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처음 토론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토론회 장소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영면해 있는 레이건 기념 도서관이라는 사실도 토론회 흥행에 한몫했다.
텍사스 주도 오스틴 인근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주택 1천여채가 전소되고 주민 5천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큰 피해를 보자 진화와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캘리포니아로 날아온 페리 주지사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열띤 공방전을 펼쳤다.
토론회는 사실상 페리 주지사와 룸니 전 주지사 양자 대결로 전개됐다. 특히 대권 도전 선언 한달만에 여론조사 선두에 오른 페리 주지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렸다.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미네소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론 폴 하원의원(텍사스), 허먼 케인 전 '갓파더스피자' 최고경영자,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 등 나머지 6명은 존재감이 없었다.
토론을 공동 주관한 NBC 방송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8명의 후보 가운데 페리 주지사와 롬니 전 주지사를 가운데 세웠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일찌감치 2파전으로 좁혀진 분위기였다.
페리 주지사와 롬니 전 주지사는 토론회 초반부터 격돌했다. 페리 주지사가 롬니 전 주지사에게 "마이클 듀카키스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당신보다 3배가 빨리 일자리를 늘렸다"고 포문을 열었다. 듀카키스 전 주지사는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아버지 부시에게 졌다.
그러자 롬니 전 주지사는 "페리 주지사의 전임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당신보다 3배나 빨리 일자리를 늘렸다"고 맞받았다.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롬니 전 주지사는 "정치 말고는 한 게 없어서 실물 경제를 모른다"고 페리를 깎아내렸다. 기업인으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 자신의 이력을 간접적으로 과시한 셈이다. 또 텍사스 주지사로서 쌓아올린 성과도 공화당이 석권한 주의회와 주 대법원의 도움에다 풍부한 석유 자원 덕을 본 것이라고 폄하했다.
페리 주지사는 "민간 기업에 있을 때 전세계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던 롬니는 주지사가 되더니 한 게 없다"면서 "롬니가 4년 동안 주지사를 맡아 만들어낸 일자리보다 내가 1년 동안 텍사스 주지사로 있으면서 만든 일자리가 더 많다"고 반박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공화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의료 보호에 대해 토론이 이어지자 둘의 노선 차이는 뚜렷해졌다. 페리는 사회보장제도를 '거대한 허구'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해 극우적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노인 연금 보장 제도를 '피라미드식 사기'라고도 했다.
롬니 전 주지사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에 오바마의 의료 보호와 거의 같은 법안을 만든 사실도 거론하며 롬니의 정체성을 따지기도 했다.
이에 맞서 롬니 전 주지사는 "사회보장제도를 때려 부수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개혁하고 재정을 튼튼하게 해서 잘 운영할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리 주지사는 보수적 가치를 내세워 공화당원의 표심을 공략했고 롬니 전 주지사는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는 양상이었다.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너무나 달라도 다른 페리 주지사와 롬니 전 주지사를 놓고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 배경과 이력, 그리고 정치적 견해와 정책 노선 등에서 하나도 공통점이 없는 둘은 앞으로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본선 못지 않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른 6명의 주자들은 나름대로 정견을 밝혔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크먼 의원은 자신이말로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보수적 가치를 강조했지만 페리 주지사와 차별화를 하지 못했다. 헌츠먼 전 주지사는 주중대사 경력을 앞세워 페리 주지사와 롬니 전 주지사가 중국을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고 공박했지만 위력은 없었다. 깅리치 전 의장은 "우리끼리 싸우는 것보다 오바마를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공화당의 단결을 촉구했다.
이날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토론회에 앞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입장, 관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봤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앞으로 4차례 더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