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3대 악한 왕으로 꼽히는 “아하스”(Ahaz)는 스무 살의 약관의 나이에 왕 위에 올라 온갖 패역한 짓을 골라합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왕들은 두 개의 삶의 방식 중에서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처음 보위(寶位)에 오르고 나서는 정치를 잘 해보려고 애쓰다가 나중에는 반대로 타락한다든지, 아니면 왕권 초기에는 멋모르고 기고만장해서 권력을 휘두르며 막 살다가 나중에는 인생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비로소 세상 무섭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 회개하고 돌아 오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아하스” 왕 만은 집권 초기부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줄기차게 나쁜 짓만 도맡아 하다가 생을 마감한 찬란한 악역의 주인공입니다. 나쁜 쪽으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얼마나 못됐으면 주변에 바른 말 해주는 신하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들도 굳게 입을 다문지 오래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요주의 사항 1호”였던 “가나안 땅”의 우상 “바알”(Baal)을 국가의 신(神)으로 모신지 오래입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아세라 목상” 앞에 제사를 지냅니다. 자신의 큰 아들도 “불 가운데를 걷게 하는 예식”을 통해 “몰렉” 신 앞에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으로부터 출발하게 된 “이스라엘 열 두 부족의 굳은 동맹”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우상과 귀신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도덕도 땅바닥에 떨어져 인륜을 저버리는 일들이 많았고, “성적인 타락”도 이미 위험 수위를 예전에 넘어 버렸습니다. 온갖 범죄에 죄악이 난무하는 악한 세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나라 안이 그렇게 썩었는데, 외적의 침입을 막아낼 능력이 과연 그들에게 있었을까요?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이미 12만 명의 용장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재물을 탈취당하고, 무고한 백성들이 적의 칼과 창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자들은 길거리에서 강간(强姦)을 당하고, 젊은이들은 노예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 북 이스라엘 왕국에 20만 명의 백성들이 무더기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가장 가슴 아픈 동족상잔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의 학정”으로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고, 서로 무기를 겨누고 살육하는 아픔의 시대 속에서 “유다의 형제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원한과 복수를 다짐하며 끌려가는 유다 사람들”이나 모두가 다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묶어서 끌고 가면서, 모욕하고, 때리고, 죽입니다. 신음과 비명이 피비린내와 뒤섞여 잔혹한 아비규환의 현장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곳 절망의 현장에 하나님의 선지지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한 줄기의 소망도 찾을 수 없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이게 뭔 짓이냐!”고 피 토하듯 절규하는 무명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오뎃”(Oded)이라는 사람입니다. “우리와 피를 나눈 이 형제들이 전쟁에 지고, 고난을 받는 이유는 아하스 왕과 썩은 지도자들 때문인데, 이들의 비극을 보면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그 틈을 타 불쌍한 동포들을 노예로 삼으려고 끌고 가는 것이 과연 사람이 할 짓이냐?”고 각성을 촉구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다음 비극의 대상으로 우리들을 택하실 것이다!”라고 독설을 퍼붓습니다.

조금 전까지 포악을 떨던 이스라엘 병사들의 눈에서 “사탄의 비늘”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즉시 노략한 전리품 속에서 옷을 꺼내 벌거벗은 유다의 형제들에게 입히고, 자신들의 신을 벋어 그들의 발에 신깁니다. 아이들과 노인들을 나귀에 태우고, 다시 그들을 본국으로 정중하게 보내 줍니다. 성경의 기록 중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장면입니다. 민족 대화합의 감동적인 역사를 일구어낸 “오뎃”이라는 이 인물! 다른 곳에서는 도무지 그의 발자취를 찾아낼 수 없는 작은 흔적뿐인 이 사람! 그러나, 그는 분명히 암흑 같은 시대를 영롱하게 밝히는 주님의 등불입니다. <그 곳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 언제 읽어도 가슴 뛰는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