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기념되는 사건이지만, 그 이후 올바른 지도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재와 억압에 맞서는 가난한 민중의 등불과 같은 존재로 나폴레옹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동 시대를 살았던 베토벤은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아 나폴레옹의 성을 따서 ‘보나파르트 교향곡’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폴레옹이 귀족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황제 추도식을 갖자 베토벤은 실망과 배신의 마음으로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는 표지를 찢어버렸습니다.

그 이래로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가 l7년 후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는 보도를 듣고 비로소 ‘나는 결말에 적절한 음악을 써 두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 작품 2악장에 있는 장송행진곡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에 이 작품을 ‘심포니아 에로이카(영웅 교향곡)’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에게 실망한 사람이 어디 베토벤 한 사람 뿐이겠습니까?

어느 시대나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대단한 기대와 부푼 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사회가 어렵고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할수록 사람들의 기대는 커지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뛰어난 영웅이 있으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하여, 유명한 사람들을 지도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에 등장했던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결국 끝에 가면 실망과 허탈감뿐이었습니다. 역사가 주는 냉정한 교훈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은 다 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지도자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을 깨뜨려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 중 하나는 세상은 영웅을 찾고 하나님은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순교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전체 교회사를 볼 때 가장 영광스러웠던 교회는 초대교회였습니다. 그 영광의 뒤에는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있었는데, 지금도 로마에 가면 고난을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땅 속에서 살았던 카타콤이라는 지하무덤이 있습니다. 그 길이가 700km 가까이 되는 구불구불한 굴무덤으로 그 안에는 많을 때는 4백만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난 일인데도 그러나 카타콤의 지도자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능력 있게 역사했던 하나님의 역사의 핵심에 사람의 이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순교의 믿음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고린도 교회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많은 은사가 나타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분오열 되어 분쟁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왜 그들은 싸웠습니까? 그리스도를 높이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보다는 인간 지도자를 높이고 그들을 영웅으로 추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결코 저질스러운 지도자들이 아니라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있었고, 아볼로가 있었고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보다 인간이 더 드러나면 교회는 수렁으로 떨어집니다.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될 때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9.11 새 생명 전도 축제를 2주일 앞둔 우리 교회는 세상의 영웅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높이는 순교자가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