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서정 다섯 번째는 양자됨이다. 양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 역시 칭의와 마찬가지로 법적용어이다. 하나님께서 이제까지는 자녀가 아니었던 자들을 이제부터는 자녀로 불러주시고, 이제까지는 그들이 누리지 못하던 것을 이제부터는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음을 확인해 주는 절차이다. 칭의가 국가적 차원에서 태생적 신분의 변화를 뜻한다면, 양자는 가족적 차원에서 관계적 신분의 변화를 뜻한다. 양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믿는 자의 심령 속에 크게 세 가지 영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첫째 변화는 영적 아버지가 바뀌었음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입양, 혹은 양자를 삼는다고 하는 말은 자기가 낳은 자녀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입양을 했다, 양자를 삼았다고 할 때는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를 국가가 정하는 법적 절차를 따라 자기의 자녀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에게 새로운 부모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부모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입양이 되는 순간부터 법적으로 낳은 부모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입양한 부모와의 관계가 새로 시작된다. 이제까지 부모였던 분들이 더 이상 부모가 아니고,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분들이 이 때부터는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르며 따라야 하는 사람들이 된다. 한 마디로 양자가 된다는 것은 부모가 바뀌는 일생 일대의 엄청난 사건이다.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불러 주실 뿐만 아니라, 친히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 죄인을 의인이라고 불러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없던 사람들을 친히 자녀라고 불러 주신다. 믿는 자에게 새로운 영적 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2절, 13절) 라고 한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 믿고 구원 받기 전의 사람들은, 자기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사단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사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 그러나 성령이 복음을 듣는 자의 영혼 속에 역사하면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여호와만이 참된 영적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고, 또 성령께서 친히 믿는 자의 영혼 속에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8장 13절-17절).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가 바뀐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변화는 양자된 자, 자신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입양된 자의 신분이 입양하는 부모의 신분을 따라 바뀐다. 입양은 가진 것이 없고, 누군가의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은택이다. 입양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신분이 입양하는 부모의 신분보다 더 월등한 경우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양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입양하는 부모의 신분을 따라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신분을 갖게 된다고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원리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믿는 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단의 농간에 속아 자기 사욕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의 영적 실상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진노의 대상일 뿐이다 (로마서 1장 18절). 스스로 부자라고 착각 할 수 있으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하나님께 양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 받을 수 있는 후사들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뜻한다 (로마서 8장 17절).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대상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신분에 걸맞게 모든 면에서 넉넉한 새로운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영적 부자가 된 것이다. 양자됨은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신분 상승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세번째 변화는 삶의 원리가 바뀌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입양은 크게 두 가지 삶의 환경 속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부모가 없어서 고아원에서 돌봄을 받다가 입양이 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부모가 있을찌라도 너무 가난하거나 건강하지 못해서 자녀를 직접 돌볼 형편이 되지 못할 경우이다. 고아가 됐든, 가난한 자의 자녀가 됐든 그들에게는 삶의 환경과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들이 있다. 고아원에서는 그 나름대로, 가난한 가정에서는 그 나름대로 그들이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나 법들이 있다. 그런데, 입양이 되어 새로운 가정으로 이사를 가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더 이상은 고아원의 규칙이나 이전 부모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따를 필요가 없다. 그들에겐 그들을 입양해 가는 그들의 부모들이 원하는 새로운 삶의 원리가 제시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 가 아니라, 지금 새로운 삶의환경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된다. 새로운 부모를 만나고 새로운 신분이 주어지면 상승된 신분 못지않게 삶의 원리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측면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믿는 자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상승된 신분을 얻게 되면, 그 사람은 지난 날의 삶의 원리나 요구로부터 자유하다. 옛 사람에게 적용되던 것들을 따를 필요가 없게 된다. 그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가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 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새로운 신분에 걸맞게 사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여기가 믿는 자들이 흔히 말하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가 들어 오는 자리요, “부르심에 합당하게” (에베소서 4장 1절,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라고 하는 말이 들어오는 자리이다. 또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양자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로마서 8장 17절),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도전하는 것이다.

다음 글: 구원론 (구원의 서정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