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청춘예찬>이라는 시에 보면 청춘의 피는 끓고,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다고 했다. 청춘을 왜 예찬하는가? 청춘에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청춘의 힘은 열정에서 나온다. 만약 젊은이들에게서 열정이 사라진다면 개인과 사회, 국가는 기대할 것이 없다. 열정이 사라진 청춘은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 청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있어 열정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열정을 뜻하는 “enthusiastic”이라는 영어 단어는 ‘하나님 안에’(엔 데오스)라는 헬라어에서 나왔다. 열정의 사도인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열정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열정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인간이 태어났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가 운행되고 있다. 그러니 열정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세계적인 암벽등산가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시범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독일의 슈테판 글로바츠는 등반가들에게 이런 교훈을 남겼다. “장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장비는 주인의 기술만큼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등반의 성공 요인은 열정에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선구자적 등반가들인 라인홀드 메스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나 크리스 보닝턴 경과 덕 스콧 경의 파키스탄 오그레 등정은 기막힌 장비가 아니라 산을 옮길 만한 그들의 열정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겨들여야 할 말이다. 재능과 능력이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지식과 재주가 있어도 열정이 없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부족한 재능은 열정이 채워줄 수 있지만, 부족한 열정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다. 성공에는 실력과 함께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행운도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열정은 행운의 여신까지 미소짓게 하는 힘이 있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우직할 정도로 단순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을 해 나간다. 마치 처마 끝에서 계속 떨어지는 낙수가 바닥의 돌을 패이게 하듯, 그들 역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어느 날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야구선수나 골프선수가 스윙을 근육에 기억시키려면 최소한 3만 번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 아시아 최고의 농구선수였던 이충희는 하루에 슛을 천 번씩 연습했고,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도 지금은 최고의 타자지만 아직도 하루에 천 번씩 스윙연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끊임없는 노력은 열정의 필수 요소이다. 나비박사 석주명은 논문 한 줄을 쓰기 위해 3만 마리의 나비를 만졌다고 하니, 이 얼마나 큰 열정인가.

1982년 암벽에서 추락해 허리 아랫 부분이 완전히 마비된 미국의 마크 웰만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천 미터 높이의 캘리포니아에 있는 엘카피탕을 1989년 7월 18일 정복했다. 엘카피탕은 웬만한 산악인들도 올라갈 수 없는 거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올라갔는데, 웰만의 신체적 상태로 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팔의 힘만 의지해 한번에 15 센티미터씩 올라갔다. 그렇게 7천 번을 반복한 끝에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열정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준다. 열정은 열악한 환경이나 난공불락의 암벽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열정이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