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펠 성벽(또는 ‘오벨’, Ophel City Wall)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고, 아울러 예루살렘에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초기 문서가 데이비드슨 센터에 전시됐다. 오펠 성벽은 예루살렘 국립공원을 둘러싼 성벽의 일부로, 제1차 성전시대(기원전 10-6세기) 성벽 요새의 경로를 따라 발견된 건물들이 있다.

오펠 성벽의 보수공사와 발굴작업이 완료됨과 동시에 방문객들은 오랜 기간을 거친 예루살렘의 역사를 말해주는 성벽과 돌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닫혀있었던 건축 유적을 이제는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고, 영상 장치나 설명과 삽화를 통한 여러 방법으로 지역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그 장엄함을 느껴볼 수 있다.

고고학 박사 에일랏 마자르(Dr. Eilat Mazar)는 2010년 초에 예루살렘의 오펠 요새 발굴을 완료했다. 이후 바로 복원 공사에 착수했고 이로써 대중들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복원 공사는 이스라엘 문화재청(IAA)에서 주관해 약 6개월 정도 소요됐다.

최근 공개된 이 곳의 건축물에는 문지기 방, 왕실 건축물, 망대의 일부, 자체 도시 성벽으로 보이는 인상적인 건물들이 있다. 마자르 박사는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왕상 3:1)의 구절에 비추어 볼 때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건축한 요새 중 하나가 이 건물이라고 주장한다. 제1차 성전의 요새와 함께 비잔틴 시대 성벽의 일부, 두 개의 망대도 발견됐다. 이 성벽은 15세기 비잔틴 황후 에우도치아(Eudocia)의 계획 하에 지어졌다. 또 이 요새와 더불어 제 2차 성전 시대(1세기) 복층의 높이가 보존된 방 두 개가 발굴되었다.

이 발굴에서 주목할 점은 문지기 방의 완벽한 발굴이다. 이 인상적인 건물은 석회석 조각들로 포장된 넓은 복도의 양 옆에 똑 같은 크기의 방이 4개가 배치되어 있다. 문지기 방의 배치는 제1차 성전 시대의 건물 특징을 보여주고, 므깃도, 브엘쉐바, 아슈돗에서 발굴된 동시대에 존재했던 문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발굴 담당자 에일랏 마자르는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느헤미야 3:26)의 구절에 언급된 수문이 이 곳일 것이라 주장한다. 대화재로 인해 파괴된 이 큰 건물의 1층에서는 문의 동쪽을 볼 수 있다. 마자르는 이 건물이 기원전 586년 바벨론 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기름이나 와인을 담는 데 사용되었을 12개의 큰 점토 항아리(pithoi)도 건물의 같은 층에서 발견됐다. 점토 항아리 중 하나의 위쪽 부분에 히브리어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빵굽는 업무의 감독관이었을 왕국의 관료 중 한 명이 점토 항아리의 주인임을 보여준다.

발굴 과정 동안 예루살렘에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기록 문서도 발견됐다. 도시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이 유일무이한 발굴물은 데이비슨 센터에서 대중들에게 영구적으로 공개된다. 이 발굴물은 그 당시의 공용어(lingua franca )인 아카드어 설형문자로 새겨진 아주 작은 점토판 조각으로, 매우 정교하게 쓰여진 단어들 중 너는… 였다(you were), 후에(later), 하기 위해(to do), 그들(they)이란 단어를 식별할 수 있다. 이 점토판과 문자는 고대에 국가 간의 서신을 위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사용했던 대표적인 점토판이다.

점토판의 문자와 재료에 관한 분석은 그것이 예루살렘 지역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점토판은 예루살렘 왕이었던 압디헤바(Abdi-Heba)가 이집트 왕에게 보낸 서신의 복사본으로 보여진다. 그 당시 예루살렘인 살렘 도시의 자료보관소에 이러한 서신들을 보관하는 것이 관례적이었다. 이 점토판 조각은 이집트 왕 파라오의 관할 도시국가인 가나안의 중요한 도시였던 예루살렘의 위상에 대한 신뢰할만한 증거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