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현직 경찰관이 살인범으로 구속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던 중, 진범이 나타나 살인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법조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기록을 검토해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보도 내용에 의하면 그 살인 누명을 썼던 경찰관은 경찰조사 때에는 자기의 범행을 자백했지만, 검찰에서부터 1심, 2심에 이르기까지 자신은 진범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찰의 무죄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심과 2심에서 12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 경찰관이 12년의 징역형을 받기까지는 4기관의 증거판단이 있었습니다. 경찰, 검찰, 1심 법원, 그리고 2심 법원입니다. 그리고 4기관 모두가 그 경찰관이 살인범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 4기관 중 어느 기관이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4기관이 그 경찰관에 대하여 어떤 편견을 가지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그랬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 모두는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의식과 지식, 그리고 양심에 근거하여 증거를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또한 기사 내용을 보면 피해자가 살해되기 전에 그 경찰관은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정황이라면 그 경찰관을 진범으로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경찰, 검찰, 법원을 통틀어서 사람의 생명, 신체, 인권들을 다루는 국가 기관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이 내린 판단이 그릇될 수도 있다는 겸허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무죄를 머리로만 따지지 말고 명백한 증거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피고인이 자기 양심으로 범죄를 완강히 부인할 때는 그 강도만큼 강한 반대 증거가 없는 한, 정황 증거만으로 속단을 내리면 오판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법과대학에서 형사소송법 강의 중에 형사소송 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 하나를 배웠습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증거 판단으로 피고인이 진범인지 의심스러울 때는 법관이 심증을 유죄 쪽으로 굳히고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결론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0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1명의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사람이 12년 동안 감옥에서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았습니까? 상상이 잘 안되면 우리 가까운 친척 중 누군가가 그러한 일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재판할 때 지켜야 될 중요한 소송 절차를 가르쳐 주셨는데 오늘날에도 경청해야 할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신명기 19장 15절 이하를 보면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한 사람의 증인만으로 그 사람을 유죄 판결할 수도 없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만 그 사람을 유죄로 판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죄 판결을 할 때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부족하고 두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유죄로 인정할 때는 그만큼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증거가 없을 때는 피고인을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능하지 않으므로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 오판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오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인간이 인간을 정죄할 때는 정확한 증거에 의하도록 하심으로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수사 기관이나 재판 기관이 모든 범죄자를 찾아 정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범죄자 전부를 색출해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다보면 무리가 따르는 것입니다.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하여 고문을 가해야 하고, 또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정황적으로 볼 때, 범인임에 틀림이 없는데 증거가 없어 사람을 풀어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경우 그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진범인 사람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증거가 없을 때 그 사람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풋볼 선수였던 O. J. 심슨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라는 점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유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증거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배심원은 그에 대하여 ‘Not guilty’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 결과를 보고 사람들은 미국의 형사재판 절차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생각하면 그 판결에 대하여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Not guilty’와 ‘그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다릅니다. ‘Not guilty’는 형사소송법적 용어이지만 ‘그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법적 의미가 아닙니다. 미국의 배심원들이 내렸던 ‘Not guilty’ 판결은 소송법적으로 그를 범인으로 단정할 만한 증거, 다시 말하면 합리적으로 의심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증명이 없기 때문에 내렸던 판결이었습니다. 배심원 중에는 그가 분명히 진범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법적으로 볼 때, 유죄로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Not guilty’라고 판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이 옥살이를 할 때 그의 원성이 하나님께 달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