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말씀 적용 원리


적용이란 믿는 사람이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주신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이다. 적용이란 믿는 사람이 그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꿔가며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용은 성경의 바른 해석을 전제로 한다. 성경 해석이 없는 말씀 적용은 없다. 성경 해석이 옳으면 신앙생활이 건전하다. 성경 해석이 옳지 않으면 신앙생활도 건전할 수 없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의 성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과 적용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나눌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건전한 성경 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 말씀의 적용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믿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100 % 다 겉사람이 갖고 있는 오관의 기능을 통하여 경험(체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대로 알고 단순하게 받아 들여야 할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몸의 오관을 통하여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천지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하늘이 있다고 하는 것, 땅이 있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손으로, 오관을 통하여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시는 순간을 몸으로 체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지창조란 이미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 그 창조의 현장에 증인으로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만물의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하늘이나, 발로 밟고 서 있는 땅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적용한다고 하는 것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천지의 생성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무엇이라고 가르치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우주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믿고 아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그 사람은 성경 말씀에 입각한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 첫 단추를 바르게 뀐 것이 된다.
둘째는 지식을 따라 자신의 언행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들으면, 믿음으로 생각을 바꿔야 할 부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알게된 것을 몸으로 순종하여 살아 드려야 할 부분도 있다. 이런 말씀들은 사람의 원함이나 호불호를 떠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의 흐름과 관계 없이 “내”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로마서 12장 20절 말씀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원수”라고 하는 말은 감정적으로 호의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을 가르킨다. 호의를 가질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의를 베풀 수 없는 상대를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배고픈 것을 보면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갖다 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적용한다고 하면, 원수가 누구냐?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각 자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원수에 대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먹이고 마시우는 것은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말씀을 적용하려면, 원수에 대한 생각을 바꿀 뿐만 아니라, 원수를 대하는 행동도 바꿔야 한다. 여기가 체험이 들어오는 자리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자리인 것이다 (히브리서 5장 13절).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원수를 향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바꾸면,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능력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적용이라고 오해되고 있는 것 중에 “대치”가 있다. 대치란 성경 본문에 있는 이름이나 어떤 말 대신에 자신의 이름이나 상황을 대입하여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이다. 이런 대치는 적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적용이 아니다. 적용은 한 단어 뿐만 아니고 문맥 전체가 담고 있는 말씀에 대한 건전한 해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 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한 말씀과 마태복음 27장 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라는 말씀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사야서 41장 말씀은 쉽게 “너” 대신에 “믿는 사람 아무개”로 대치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실제로 적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적용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마태복음 27장 5절 말씀을 적용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유다”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대입하여,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가진 돈은 다 교회에 갖다 바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라는 것이구나” 라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대치가 가능하다고 하여 이사야서 41장 10절의 말씀은 적용 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대치 할 수 없다고 하여 마태복음 27장 5절 말씀은 적용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치가 적용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성경 본문을 취사선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형편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게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바르게 해석하면, 마태복음 27장 5절 말씀도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사야서 41장 10절 못지 않게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은혜를 끼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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