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TV 드라마에 유명 여자 배우가 등장한다. 누가봐도 예쁜 얼굴. “어쩜 저렇게 예쁠 수가 있니.” 엄마의 감탄을 새침한 딸이 받아친다. “저거 다 고친 거야, 엄마. 속지 마.”
성형수술이 흔치 않던 시절, 유명 연예인의 ‘커밍 아웃’은 그것 자체로 화제였다. 당시로선 코나 눈을 고쳤다는 고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형이 대세가 된 요즘, 상황은 변했다. ‘손 대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슈가 된다. 급기야 딸 생일에 쌍꺼풀 수술을 선물했다는 아빠까지 등장했다. 남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화장도 하는데 성형, 그까짓 것 쯤이야. 이제 성형은, 적어도 한국에선, 일반적인 ‘미용 활동’ 중 하나다.
문제는 크리스천이다. 하고는 싶은데, 왠지 찜찜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라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에겐 창조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행여 ‘칼’을 댔다가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면 어쩌나. ‘천국 문 앞에서 하나님이 날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에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혹시나’ 한다. 주변 시선도 의식된다.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교회는 아직 보수적이다.
“자신감 찾을 수 있는 수단” VS “성형이 성형을 부른다”
사람들 생각은 어떨까. 물론 찬반이 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선, 일단 ‘생존’과 관련된 거라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외모, 안 본다지만 어디 그런가. 우월한 ‘스펙’으로 서류심사 통과해도 면접만 들어가면 추풍낙엽이다. “예쁜 사람들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밥벌이 하려면 성형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처절한 절규다.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사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또 하나는 정신적인 차원이다. 고쳐서라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 상실로 사회에 적응조차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성형이 백 번 낫지 않냐는 주장이다. 때론 성형외과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 못지 않은 치유처가 될 수도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반대도 만만찮다. 우선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예를 들어 뼈를 깎으면 피부와는 달리 쉽게 피가 멋지 않는단다. 뼈에서 계속 피가 나오기 때문에, 비록 외모는 이전보다 예뻐질지언정 몸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턱을 깎은 한 20대 여성은 수술 뒤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이 피가 목을 짓눌러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는 섬뜩한 예화도 든다.
약간의 성형은 괜찮지 않냐는 의견에도, 반대론자들은 성형이 성형을 부른다고 반박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눈을 고치면 코를 고치고 싶고, 코를 고치면 입을 고치고 싶은 게 바로 인간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끝내 ‘성형중독’을 낳고, 이는 외모보다 더 아름다워야 할 우리 인생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의 기준은 시대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달라 성형을 통해 예뻐진다 해도 언젠가 미의 기준이 달라지면, 다시 성형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성경적으로 죄는 아니나, 과도한 성형은 금물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성형을 굳이 죄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에 자신감을 찾는 차원을 넘어 집착에 이른 것이라면, 이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는 “치료를 목적으로 성형을 택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성형을 반드시 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며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의 범위가 다르다. 그래서 성형도 누구에겐 그저 미용의 하나일 수 있는 반면, 누구에겐 심각한 죄로 인식될 수 있다. 죄의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형용 박사(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도 “성형 자체를 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치료의 수단인 성형은 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박 박사는 “치료가 아닌 다른 의도로 성형을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의 특성을 보존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외모가 아니라면 성형은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영 박사(전 성결대 총장)는 故 김준곤 목사의 일화를 예로 들며, 크리스천이라면 성형을 일반인들보다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故 김준곤 목사는 금식기도로 몸이 지친상태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당시 시급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몸에 함부로 칼을 댈 수 없다며 수술을 미뤘다. 그러나 결국 수술을 받았고 김 목사는 회복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비록 수술을 받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는지 김 목사를 통해 알 수 있다”며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창조하셨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약학자인 최갑종 교수(백석대)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형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따라서 성경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개인이 고민해서 선택해야 할 문제다. 교회나 교권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목회자인 박요한 목사(성암교회)도 “신앙이 있어도 예뻐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같다고 생각한다”며 “창조섭리를 이유로 성형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크리스천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에 사회적 요구에 적응해야 할 때가 있다. 성형은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과거의 가치관으로 성형한 이들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성형수술이 흔치 않던 시절, 유명 연예인의 ‘커밍 아웃’은 그것 자체로 화제였다. 당시로선 코나 눈을 고쳤다는 고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형이 대세가 된 요즘, 상황은 변했다. ‘손 대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슈가 된다. 급기야 딸 생일에 쌍꺼풀 수술을 선물했다는 아빠까지 등장했다. 남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화장도 하는데 성형, 그까짓 것 쯤이야. 이제 성형은, 적어도 한국에선, 일반적인 ‘미용 활동’ 중 하나다.
문제는 크리스천이다. 하고는 싶은데, 왠지 찜찜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라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에겐 창조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행여 ‘칼’을 댔다가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면 어쩌나. ‘천국 문 앞에서 하나님이 날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에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혹시나’ 한다. 주변 시선도 의식된다.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교회는 아직 보수적이다.
“자신감 찾을 수 있는 수단” VS “성형이 성형을 부른다”
사람들 생각은 어떨까. 물론 찬반이 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선, 일단 ‘생존’과 관련된 거라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외모, 안 본다지만 어디 그런가. 우월한 ‘스펙’으로 서류심사 통과해도 면접만 들어가면 추풍낙엽이다. “예쁜 사람들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밥벌이 하려면 성형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처절한 절규다.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사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또 하나는 정신적인 차원이다. 고쳐서라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 상실로 사회에 적응조차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성형이 백 번 낫지 않냐는 주장이다. 때론 성형외과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 못지 않은 치유처가 될 수도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반대도 만만찮다. 우선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예를 들어 뼈를 깎으면 피부와는 달리 쉽게 피가 멋지 않는단다. 뼈에서 계속 피가 나오기 때문에, 비록 외모는 이전보다 예뻐질지언정 몸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턱을 깎은 한 20대 여성은 수술 뒤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이 피가 목을 짓눌러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는 섬뜩한 예화도 든다.
약간의 성형은 괜찮지 않냐는 의견에도, 반대론자들은 성형이 성형을 부른다고 반박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눈을 고치면 코를 고치고 싶고, 코를 고치면 입을 고치고 싶은 게 바로 인간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끝내 ‘성형중독’을 낳고, 이는 외모보다 더 아름다워야 할 우리 인생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의 기준은 시대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달라 성형을 통해 예뻐진다 해도 언젠가 미의 기준이 달라지면, 다시 성형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이들은 경고한다.
▲성형에 대한 찬반 의견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자신감 고취 등을 이유로 찬성하는가 하면, 성형은 또 다른 성형을 부른다며 반대하기도 한다. ⓒ김진영 기자 |
성경적으로 죄는 아니나, 과도한 성형은 금물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성형을 굳이 죄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에 자신감을 찾는 차원을 넘어 집착에 이른 것이라면, 이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는 “치료를 목적으로 성형을 택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성형을 반드시 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며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의 범위가 다르다. 그래서 성형도 누구에겐 그저 미용의 하나일 수 있는 반면, 누구에겐 심각한 죄로 인식될 수 있다. 죄의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형용 박사(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도 “성형 자체를 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치료의 수단인 성형은 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박 박사는 “치료가 아닌 다른 의도로 성형을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의 특성을 보존하는 것이 좋다.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외모가 아니라면 성형은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성영 박사(전 성결대 총장)는 故 김준곤 목사의 일화를 예로 들며, 크리스천이라면 성형을 일반인들보다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故 김준곤 목사는 금식기도로 몸이 지친상태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당시 시급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몸에 함부로 칼을 댈 수 없다며 수술을 미뤘다. 그러나 결국 수술을 받았고 김 목사는 회복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비록 수술을 받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는지 김 목사를 통해 알 수 있다”며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창조하셨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약학자인 최갑종 교수(백석대)는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형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따라서 성경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개인이 고민해서 선택해야 할 문제다. 교회나 교권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목회자인 박요한 목사(성암교회)도 “신앙이 있어도 예뻐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같다고 생각한다”며 “창조섭리를 이유로 성형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크리스천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에 사회적 요구에 적응해야 할 때가 있다. 성형은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과거의 가치관으로 성형한 이들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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