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시온장로교회 이홍제 은퇴목사가 WCC 논란에 대해 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홍제 목사는 부산신학교(현 경성 대학교 신학부)와 Southwestern College 등에서 공부하고 예일대 신학부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본지는 이 글을 오늘과 내일 2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이홍제 목사.
2013년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된다는 발표가 있자, WCC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한국 교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 교계만이 아니라 미국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교계에서도 WCC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교파들과 그렇지 아니한 교파간의 갈등과 대립이 한국 못지 않게 뜨거우며, 서로가 경계해오고 있음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들은 WCC에 속한 교회들에 대해 “신학과 신앙은 말할 것 없고 사회정의라는 이름하에 기독교를 세속화시키는 선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반성경적인 교회들”로 보기 때문에 피차간에 대화나 연합 활동이 없는 편이다. 이처럼 미국 교계도 한국 교계 못지 않게 양분되어 WCC의 정체성에 갈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심을 갖고 양측 신학자들의 찬반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삼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2010년 4월 27일자 한 일간지에 “WCC 반대, 그저 경험과 정서 때문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간단한 기사를 읽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는 “WCC의 문제점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WCC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서울장신대학교 정병준 교수는 “WCC 비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WCC를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두 교수의 주장을 요약한 기사만으로 평을 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고, 오해로 실언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정병준 교수의 항변이었다. 그에 따르면 WCC는 “단일교회 추구”, “용공”, “사회구원”, “다원주의”와 같은 주제들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전형적으로 이에 대해 비판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WCC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중앙위원회를 열고 북한군의 남침에 대처해 유엔이 한국에서 경찰 활동을 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한 예를 들면서, 이를 보아도 “WCC가 용공이라는 것 역시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흑색선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글을 읽은 후 보수와 진보간의 상반되는 다른 주제들은 우선 접어두고, WCC가 용공이 아니라는 데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다음과 같은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2004년 12월 4일부터 9일까지 아프라카 르완다(Rwanda) Kigali에서 WCC 주관으로 Conference가 있었다는 기사다. 그 대회의 주제는 “Theological Consultation on Affirming human dignity, rights of peoples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였고, WCC 세계대회 대표로 25명이 다음의 나라에서 참석했다: Burundi,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Kenya, Rwanda, Philippines, South Korea, Brazil, Uruguay, Tonga, Finland, Germany, Russia, UK, Canada, and USA.

아마도 이들 25명은 WCC를 대표하는 지도급의 인사들로 신학자, 사회학자, 인권운동가로서 신앙과 학문과 현장 체험을 겸비한 정의와 평화주의들이었을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으며 신음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희망의 특사 역할을 자청하리만큼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자들이요, 불의로 인해 발생한 인간의 비참하고 절박한 문제에 직면한 자들에게 중립적이고 무관심의 태도를 보이는 자들을 죄악시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진것 없고 누리지 못하여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억압받고 버림당하고 고난당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정의, 자유, 해방,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해 주기 위한 투쟁을 사명으로 여기면서 인권 대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투사들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이 왜 르완다에 모였었는가? 르완다의 자연을 즐기거나 단순한 시찰을 하려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르완다가 처한 상황에 마음 아파하며 개선하여 주기 위한 사명감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온 저명한 인사들이었을 것이다. 르완다인들이 겪고 있는 참상에 분노하면서, 그들의 상한 심령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며, 새로운 희망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도전하게 하여 자신들의 인권을 쟁취함은 물론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형제자매 되게 함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동족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반복되지 않는, 새롭게 거듭나는 나라와 민족이 되도록 근원적인 대책을 제시해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르완다는 비극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대학살 10주년이 되는 2004년이었다. 르완다는 1994년에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갈등으로 80여만명이 학살되는 재앙을 겪었다. 기득권 쟁취를 위한 두 종족간의 탐욕스럽고 추잡한 싸움은, 인종 청소를 겨냥한 치밀하게 계획된 만행이었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암살되는 등 갈수록 내전으로 확산되면서 나무를 자르듯 사람들의 사지를 잘랐으며 수많은 무리를 이룬 살인자들이 다른 무리를 쫓아가며 무차별하게 목을 내리쳤다고 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석 달의 내전 중 하루에 1만여명씩을 살해한 학살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었다고 한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상대방의 적을 겨눈 전쟁이라기보다는 이웃, 선생, 학생, 남녀 친구 등이 살인자로 변해 서로가 서로를 칼, 도끼, 몽둥이, 괭이 등으로 살상했다는 것이다. 르완다의 Nataram 마을에서는 5천명이 넘는 남녀노소가 한 장소에서 학살을 당했고, 아직도 그 유골들이 종족간의 갈등 참상을 실감나게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가진 르완다에서 WCC가 대학살 10주년을 기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권위 있는 인권운동가 25명을 참여시켜 Conference를 개최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요, 박수를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본다. 필경 WCC는 그 모임을 통해 성명서 발표만이 아닌, 실제 행동하는 양심으로 르완다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와 새로운 변화의 결단력을 촉구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부여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WCC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도 되었을 것이다. 터키의 아르메이아인 학살, 나치의 유대인과 집시 학살, 그리고 크메르군의 캄보디아인의 학살의 참혹함을 연상케 할 만큼 르완다에서도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여 그 여파가 10년 후에도 여전히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요, 아직도 부의 양극화, 환경파괴, 민족주의, 인종주의, 대량 살생무기 소유 등으로 르완다의 현실은 안정치 않았고 미래는 불확실한 때에 WCC가 각국의 인권운동가들을 동원한 것은 WCC다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UN, EU, USA도 미처 하지 못한 거대한 민권운동으로, 르완다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면서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 존엄성을 찾아주려는 WCC의 의도는 주목할 만한 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와 NCCK(한국교회협의회)에 궁금증이 있는 것이다. 왜 WCC와 NCCK는 북한에서도 르완다에서와 같이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들을 동원하여 Conference를 개최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보는 북한은 인권·자유·평등의 나라인가? 북한은 정부가 주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으며, 자국이나 외국에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자신들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나라인가? 북한의 과거와 현재의 주민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지 않으면 외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납득이 가지를 않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인권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지,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은 NCCK는 북한의 실상에 대하여 WCC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그 대책을 세우는가이다. 만일 WCC가 자체의 인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북한의 참혹한 상황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외면하고 있다면, NCCK가 어떠한 역할로 대처 하고 있는가도 궁금한 것이다. 행여 이들이 북한에 대해 방관 하는 것은 어떤 숨은 의도나 묵계가 있어서인지도 의심 나게 한다. 이들이 탈북자들을 보는 시각이 무엇이기에 그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오며 중국 정부가 북한 정부의 편에서 탈북자들을 비인권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WCC와 NCCK를 용공단체로 의심하는 것에 “아니오”라고 부정만 해서야 되느냐 말이다. 세계적인 인권 단체라는 이 두 기관이 북한의 압제하에 주민들의 인권은커녕 짐승같은 취급을 받으며 빠삐용 같은 감옥살이 삶을 사는 처절한 상황을 외면하는 것을 어떻게 평해야 하는가? WCC와 NCCK의 성격상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북한과 중국에서 전개되어가고 있는데도 그들은 시종일관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독 이들 두 나라에 대해 할 말도 못 하며 몸을 사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참으로 아리송하기에 르완다에서는 되고 북한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동시에 용공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6th WCC General Secretary 인 Rev. and Dr. Samuel Kobia가 평양을 방문하여 봉수교회에서 설교 한 내용을 2009년 10월 19일자 World Council of Churches의 인터넷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고린도전서 12장을 설교 본문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는 하나라면서, 이번 방문은 조선그리스도인연맹(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이 WCC 공동체의 한 지체임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요, WCC의 역할은 남북 교회가 서로 화해, 통일, 평화를 이루는 희망을 갖도록 돕는 것이요,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만큼 WCC를 당신들의 친구로 형제 자매로 여겨 달라면서 감사와 함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가족 그리고 북한에 임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와 같은 설교 내용에 대해 왈가불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WCC의 최고 책임자로 북한 방문에 대한 성격과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Rev. Dr. Kobia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자문자답 해본 것은 왜 WCC나 NCCK의 관계자들이 북한 앞에서는 모두가 순한 양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WCC와 NCCK는 대상이 누구든지간에 그들에 대한 빈곤·인권·정의·자유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현실 참여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 종교 단체중 WCC만큼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로 자처하며 소외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장을 적극 찾아 다니며 어루만져 주는 단체가 어디 있나? 그들은 절대적인 사명감으로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폭력·가난 전쟁 등에 대적하면서 선봉자 역할을 자행하는 단체로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래서 르완다에서 정의·자유·평화·치유를 외친 것이 아닌가? 르완다에서 WCC의 함성은 르완다 만이 아닌 오대주를 향한 외침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치유하기 위해 두려움 없는 포성으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 정글의 모든 생명들의 새벽잠을 깨운 것이요, 동시에 문명의 빌딩 숲에서 특권을 누리며 부당하게 가난한 자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자본주의 철면피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운 것이라며 스스로 감격해 있다 본다.

이홍제 목사는

부산신학교(현 경성 대학교 신학부) 졸업
Southwestern College B.A.
PCUSA 소속 San Francisco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M.Div.
Western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Th.M. 과목 이수
The University of KentM.A.
The University of Glasgow Ph.D.(The Christology in Latin American Liberation Theology and Korean Minjung Theology)
예일대 신학부 객원연구원(A Research Fellow)
미국 장로교 소속 캔사스 노회(The Presbytery of Southern Kansas)에서 목사 안수
위치타 한인 장로교회(Wichita Korean Church) 2년 담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시온 장로교회에서 16년 담임 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