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리스도인'이란 단어 자체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예수님은 '그리스도'이고 나는 '그리스도'라는 말 뒤에 사람인자 하나 더 들어간 자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인데 결국 내 삶에 강조될 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인데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흔적이 보이는가?' 이 생각을 하다가 예수님한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강건한 속사람을 이루기 우해서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누구든 식당에 들어갔다 나오면 옷에서 음식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냄새들 때문에 누구든 어떤 식당에 갔다 왔는지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옷에서 나는 냄새를 통해서 한 사람의 하루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냄새의 강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냄새가 강할수록 그는 성숙한 것이고, 약하다면 그만큼 미성숙한 것입니다. 날마다 교회를 드나드는데, 날마다 성경을 끼고 다니는 것 같은데 그런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내면을 통제하시도록 나를 드려야 합니다. 정권 탈취를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세력들은 권력의 최중심부를 먼저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면 자연히 무장해제가 일어나고 이어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등이 차례로 장악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내 마음을 장악하시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고든 맥도날드라는 분이 저술한 책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은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탁월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책 원제는 'Ordering Your Private World'라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삶을 정리 정돈하라는 말입니다. 정리정돈을 위해서는 순서가 필요합니다. Order라는 말은 '순서를 매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재나 제 사무실을 정돈할 때 제가 하는 일 중 큰일은 '버릴 것'과 '놓을 곳'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저희 집 거라지는 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이사를 한 이우로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잡동사니들에 대하여 버릴 것과 놓을 곳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돈이 안 되면 무질서해 보입니다. 마음이 무질서한 상태가 바로 염려입니다. 이 염려는 '캐오스'란 의미의 혼돈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뉘어진 것을 말합니다. 여기저기 생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그리면 됩니다. 생각이 흩어지면 예수님의 통제받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버릴 것에 미련을 두면 정돈을 미루게 됩니다. 정돈이 미뤄지면 그만큼 삶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버릴 것이 무엇인가요? 이전에 오로지 겉사람을 위해서 사용했던 도구, 방법, 수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에베소서 4:22)"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제자와 무리들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제자와 무리를 구분 짓는 핵심은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가, 아니면 버리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예수를 따르는가에 있었습니다. 버림은 중요합니다. 저는 요즘 버림의 신학에 심취해 있습니다.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음의 정리정돈을 위해서는 위치를 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용하지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내가 늘 머무는 가까운 곳에 두는 것이고 가끔씩 사용하는 것은 내 생활반경에 좀 멀리 두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혼돈해집니다.

예배를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곁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일을 하십시오. 예배보다 더 필수적인 일은 없습니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만드는 일이 먼저입니다. 속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강해집니다. 겉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10분의 1만 해도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질서가 잡혀갑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우선순위의 대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속사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속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걸었습니다. 우습게 보이는 행동 같지만 그것이 다니엘을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속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면 형통의 인생이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왜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까? 먼저 해야 할 일이 그것인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잠이 들었습니까? 우선순위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구별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았을 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구별된 모습의 소유자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보고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