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한국 방문 이후, 저는 친정 아버님 생각을 자주 합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부모님 댁에서 작별하기 전, 체념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그러나 아버지 특유의 애써 평강을 잃지 않으려는 표정으로 저를 묵묵히 바라보시던 그 모습이 생각나,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저를 떠나보내시며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내가 저 아이를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으셨겠지요. 저희 친정 아버님은 현재 89세,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노쇠하신 상태입니다. 저 역시, 또 언제 아버지를 뵐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이번 방문시, 바쁜 일정을 쪼개어 가능한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자 함께 외식도 하고, 시내를 걷기도 하고, 걷다가 상점에 들려 간단한 쇼핑도 하면서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는 행복해보이셨고,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을 생각하면 가시고기 예화가 생각나곤 합니다. 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둥지를 지으며, 모래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합니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것을 넣고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합니다. 가시고기는 치어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내어놓는데, 그 부성애로 인해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의 부성애는 남달랐습니다. 자식이라면 아까운 것이 없는 분이지요. 자신의 모든 재능과 재산과 삶 전체를 저희 5남매를 키우는데 쏟아부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5남매는 다 최고학부까지 마치며 각자의 자리에서 부족함이 없는 인생들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너무 바쁘다 보니 다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제대로 시간을 못내어드립니다. 지난 번 한국방문시 모처럼 모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좀 자주 찾아다오, 내가 몹시 외롭구나” 하시면서 끝내 눈물을 터뜨리셨습니다. 막내 아들인 아버지는 손위 누나를 많이 의지하며 자라나셨습니다. 작고하신 고모님의 딸을 만나시더니 마구 흐느껴 우셨습니다. “누나가 보고싶구나” 하시면서 말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가시고기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가족들을 위하여 자기의 전부를 희생하듯 살아가지요. 이 희생적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하여 이같은 희생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땅의 아버지들은 하나님을 예표하며, 이 땅의 남편들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예수 믿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이 진리를 깨닫고 부모님을 제대로 존경하며 살아오지 못한 죄, 남편을 온전히 섬기지 못한 죄를 많이 반성하며 회개했지요.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아버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부디 하나님 경외하듯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찾아주는 이 많지 않은 외로운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시다. 그리고 주께서 맺어주신 남편을, 예수님 생각하듯 존경하고 순복하며 사랑으로 섬깁시다. 이렇게 하여 가정의 질서가 회복될 때, 하나님은 그 가정에 복을 주시며, 우리의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