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간증집회에서 <하나님이 못 고칠 사람은 없다>의 저자 박효진 장로(서울 명문교회)를 만났다.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목사가 시무하는 소중한 교회에서 열린 부흥집회에서다.

집회 기간 내내 소중한교회엔 훈훈한 감동과 깨알같은 웃음이 감돌았다. 강단에 선 박 장로는 친근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무장해제 시켰고, 복음의 진지한 주제를 풀어내면서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유머와 위트로 청중들을 시종일관 '빵빵' 터지게 했다.

그는 전과 10범이 넘는 악질 죄수들만 모인다는 청송감호소 근무 시절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겪은 영적 전쟁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까지 그 짧은 순간 불타는 신앙의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나갔다.

▲청송교도관 시절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깨닫게 된 복음의 감동을 전하는 '메신저' 박효진 장로가 17~19일 캘리포니아 브레아 소재 소중한교회에서 간증집회를 열었다. 20년 넘게 간증 집회를 이어오고 있는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에 마치 '갓 구워낸 빵'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정한나 기자

―2박3일간 이어진 이번 집회에서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이었나.

압축하자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영광을'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냥 구호나 말이 아니라 현실로 일어난 상황을 전하면서, 복음을 알면서도 언저리를 맴돌던 사람들에게 진솔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 가슴 깊이 정곡을 찔러서 영혼의 각질을 깨트리는데 주안점을 뒀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전 세계를 돌면서 1년에도 수백여 차례 집회를 다니시는 걸로 안다. 아예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

솔직히 말해 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그런데 이모양 저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상황을 통해, 그리고 내적 통찰을 통해 평신도 사역자로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름이라 확신하고 난 후 목사의 꿈을 접었다. 목사가 되는 순간, 간증의 벽이 성도들로부터 멀어지고 설교자로서밖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도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서 신앙 안에서 삶의 해답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하나님은 내게 아프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Do it"이 아닌 "How about" 으로 다가가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목사 보다는 평신도 사역자가 더 낫다.

주로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 성공한 이야기, 뛰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출발해 오니까, 서로들 공감하고 거부감이 없다. 나 또한 그렇다. 밑바닥에서부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느끼게 된다.

―20년 넘게 간증집회를 계속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는 없나.

많은 이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 같은 주제를 오랫동안 반복해 이젠 지겹지 않냐고. 청송교도관 시절 근무하면서부터 간증집회를 해 왔고, 직장을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하게 된 건 2000년부터다. 정확히 21년째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할 때마다 동일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마치 갓 구워낸 빵 같은 느낌이랄까. 단순한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증 속에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 'Then and Now'로 그 때 그곳에서 일어난 상황이 아닌, 현재 상황으로 재현된다.

그러니 해도 해도 지치지 않는다. 보통 녹음 테이프만 해도 10년 넘게 틀면 닳아빠져 '잉잉' 하고 늘어진다. 하지만 이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온 건 진짜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신 특별한 은총 때문인 듯 싶다.

―이번에 김기동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에서 집회를 가졌다. 평소 김 목사님과 친분이 있으셨나.

평신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김기동 목사님은 내게 있어 항상 선의의 영적 경쟁자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그 분은 그 분 나름대로 '고구마 전도왕'으로 전도 영혼 구원 방면에서, 나는 나대로 '교도소 구원' 방면에서 평신도 사역자로 쌍벽을 이루다시피 해 왔다. 한국서는 만날 기회가 자주 없었지만, 미 동부에서 김 목사님이 신학하던 시절 아이들 데리고 만나면서 교제를 나눠왔다.

―저서 <하나님이 못 고칠 사람은 없다>에 이어 앞으로 또 책을 낼 생각은 없나.

실은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다. 탈고까지 거의 다 마무리됐지만, 세상에 내 놓을만한 자신이 아직 없다. 첫번째 책의 감동을 능가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훼손하지 않을 정도의 감동이 있다고 판단될 때 내어놓을 생각이다. 그런데 어쩌면 평생을 두고도 못 내어놓을지도 모른다.

수석가(돌을 모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엔 많이 모아놓았다가 버리고 또 버리고 결국 마지막 돌 하나만 '최고의 돌'로 남는다고들 하지 않는가.

―두번째 책에는 주로 어떤 주제를 담았나.

간증도 주를 이루지만, 평신도로서 느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교회 안의 잘못된 편견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재미있게 엮어봤다. 진부한 현장 보고서가 아닌, 영적인 깨달음과 교훈이 함께 하는 내용으로 채우고자 노력했다. 성도들이 그걸 읽고 주님과 교회를 건강하게 섬길 수 있길 바란다.

―교도관을 그만 둔 뒤, 고정 수입이 끊겼다. 가끔 직장을 그만둔 게 후회 될 때는 없는가.

나올 때 까지는 걱정스럽고 불안했는데, 나온 이후론 '괜히 걱정했다' 싶었다. 때론 풍족할 때도 있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도 있다. 기복이 심하다. 그러나 그것과 내 사역을 연결시키면 비참해진다. 가령 열심히 사역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먹을 게 없어서 이 일을 하나...'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런 생각 하면 비참해서 못 산다. 늘 집회를 마치고 "오늘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의 몇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셨나" 돌아본다. 단 한 영혼에게라도 소망을 끼쳤다면 천금보다 더 귀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비록 은행 통장은 마이너스 일지 모르지만, 내 은혜의 통장은 갈수록 상한가를 친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할 일이 많다. 한국 소속 교단(합동)에서 요청이 들어와 있기도 하다. 필요하다면 부르심에 순종해 남은 여생 복음의 불꽃을 태워 일할 생각이다. 또한 할 수 있다면 집회도 업데이트 해서 계속이어나갈 계획이다. 집필 활동도 꾸준히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각 교회 목사님들과 교인들을 '컨설팅' 해 주는 것이 꿈이다. 보통 한 교회에만 오래 있다 보면 시각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경우 하도 많은 교회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 이 교회는 이 부분만 잘 하면 성장할 수 있을텐데..." 하는 게 보인다. 그래서 컨설팅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이렇게 고치면 어떻겠나' 하는 식으로 20년 집회 생활 하면서 보고 겪은 각 교회의 장단점을 모아 노하우가 보편화되도록 나누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