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17일 오후 4시 서울 연지동 학술원 세미나실에서 ‘한국 기독교와 자살문제’를 주제로 제14회 월례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곽혜원 박사(21세기 교회와 신학포럼 대표)가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한국교회가 자살을 죄로 인식하며 자살한 자들을 정죄하는 데서 벗어나, 영혼에 대한 사랑과 돌봄의 관점에서 자살 문제에 접근해야 함을 역설했다.

곽 박사는 “자살은 소중한 생명을 상실하는 자살자 자신의 비극이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이라며 “자살이 사회악이라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인간애(人間愛)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론 자살은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결코 합리화되거나, 미화되어선 안된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한을 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일 것”이라고 밝혔다.

곽 박사는 “자살한 개인에게 죄가 있는 지의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모는 불의한 사회구조의 문제를 되짚어 보는 것이 남아있는 자들의 마땅한 도리”라며 “자살의 사회적 확산이 단지 자살한 당사자의 의지력 박약이나 충동적 일탈행위, 심리·정신적 문제의 차원에서 일어난다기보다는, 오히려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 공동체가 급속도로 해체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이에 부적응한 사회 구성원들을 돌보지 못한 공동체의 실패와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곽 박사는 한국교회와 자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자살문제는 21세기 한국 기독교의 향방과 존립을 좌우하는 대단히 중대한 사안”이라며 “한 사회의 자살률은 그 사회에 몸담고 있는 종교가 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더욱이 현재 잘못된 영성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자살이 증가하는 한국 사회의 현 상황에 또 다른 원인 제공자로 비판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 박사는 또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고난을 저주로 간주하는 목회자들의 그릇된 목회철학도 기독교인들의 자살률 상승에 일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한국 개신교계는 자살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심리·정신적 문제로만 취급해 왔다. 일각에서는 자살을 단순히 ‘죄냐, 아니냐’라는 흑백논리로 접근해 왔다. ‘자살은 용서받지 못할 죄로서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가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자살에 대한 한국 개신교계의 태도를 보면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은 생명을 살리려는 안타까운 진심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막연한 신학논쟁과 일방적 정죄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라며 “자살은 죄라고,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위협적으로 말하면서도 정작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는 인색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곽 박사는 자살을 단순히 죄로만 보는 신학적 접근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계 안에서 자살이 큰 죄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구원받지 못할 죄, 성령훼방 죄, 지옥에 가야 하는 죄인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며 “일련의 신학자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자살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즉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건에 전적으로 근거함으로써, 인간은 이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으므로(롬 5:1), 자살이 구원과 저주를 단적으로 결정하는 조건일 수 없다는 것”이라며 “또한 자살자들이 회개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림으로 인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의 비현실성도 지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곽 박사는 “이제 한국 개신교에서는 자살을 흑백논리로 인식하거나, 단지 개인적 문제 내지 정신질환자의 문제로 치부하는 단발적인 대처보다는,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그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한국 개신교는 교파·교단을 초월해 상호 긴밀하게 자살문제에 대처하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