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 계획 (5)
일곱 번째 산 봉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이다. 예수님의 초림은 말씀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한 번 더 인간 세계 속에 하나님의 실존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신 계시 사건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이 예수님의 초림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 강림 이전 (B. C.)과 그리스도 강림 이후 (A. D.)로 나누어 진다. 예수님의 초림은 이런 뜻에서 역사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초림인 일곱 번째 산 봉우리에서 역사를 돌아다 보면, 구약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활동을 끝으로 400여년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모습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은 모세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연대 계산을 따라 출애굽 사건의 연대를 B.C. 1450년으로 보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은 모세 때부터 말라기 선지자 때까지 약 1000여년 간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자자들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들이다. 이 말씀들은 오실 메시야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삶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의 역사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사 시대 못지 않게 신정국가인 이스라엘 조차도 죄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하는 것만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나라에 구속의 은총을 알리기를 원하셨지만, 솔로몬 이후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반목과 분열, 전쟁과 전쟁의 악순환 속에서 결국은 파멸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스럽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을 끝으로 침묵 하셨다. 하나님이 구상하고 있는 구속의 계획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 가시기 전에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시기라도 하듯이.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께서 그 침묵을 깨고 친히 인간 세계 속에 찾아 오셔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해 주신 사건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를 떼면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장 1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장 14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장 18절).

“예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이 위인 성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분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고, 친히 성육신하여 한 인간으로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직접 말씀 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1:2). 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앞서 보낸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의 씨로, 다윗의 씨로, 유대인 중 한 남자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이지만,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야가 아니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유대인들만의 구속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저주와 죄의 영향력 아래 신음하며 고통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 모든 언어와 문화와 인종을 포괄하는 전 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살펴 보게 될 구원론의 요체는 이 “예수”라고 하는 이름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하는 일곱 번째 산봉우리에서 미래를향하여 눈을 들어 바라 보면 구속 역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시야에 들어 온다.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메시야의 재림은 초림에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 때와 마찬가지로 초림의 메시야와 재림의 메시야를 혼동하여 예수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하고 여전히 모세나 다윗과 같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해방자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나, 메시야의 강림을 보여 주는 구약의 예언들이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을 마치 한 사건인 것처럼 묶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이 종종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까닭이다. 여섯 번째 산 봉우리에서 일곱 번째 산 봉우리를 올려다 보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절정인 메시야의 재림이 메시야의 초림에 가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약속하셨던 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던 오순절 사건 이 후에야 비로소 믿는 자들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메시야의 도래가 초림과 재림이라고 하는 두 단계를 통하여 완성되도록 계획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메시야의 초림부터 재림과 심판까지를 통칭하여 “마지막 날” (히브리서 1 장 2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흔히 말하듯 말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초림은 말세의 시작이고, 예수님의 재림은 말세의 끝이다. 현재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종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말세의 한 정점이다. 초림이 구원의 시작이었다면 재림은 구원의 완성이다. 현재는 초림으로 이미 완성된 구속 사건과 재림으로 완성될 아직 남아 있는 몸의 구속 사이에 끼어 있다.

이 현 싯점에서 바라 보는 재림과 심판은 불투명한 것이 적지 않다. 물론 성경에는 재림과 심판에 대하여 투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말씀들이 명료하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들을 종합하다 보면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있게 될 것 같은 상황을 몇 가지 시나리오로 엮어 볼 수 있게 되는데, 조직신학에서는 그런 시나리오를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것은 종말론을 다룰 때 좀 더 세분하여 설명하게 될 것이다.

성경 역사 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여인의 후손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재림까지 정리해 보면 각 산 봉우리는 다음과 같다. 여인의 후손 노아와 맺은 언약바벨탑 사건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모세와 맺은 언약다윗과 맺은 언약예수님의 초림예수님의 재림과 종말. 역사의 지평을 곁에 서서 바라 보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타락 이후 사람들에게 점진적으로 알려져 왔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역사의 지평에서 뒤를 돌아 보면 십자가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구속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앞을 향해 눈을 들면 재림 하셔서 몸의 구속을 온전케 하실 부활의 주를 바라 보게 된다.

다음 글: 간단한 성경 해석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