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WH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경계는 ‚이집트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창 15:18)이다. 하지만 보다 사실적인 경계는 단에서 브엘세바(삼하 3:10)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성경에 자주 기록되었으며 이와 비슷한 표현은 할락산에서 바알갓까지(수 11:17)이다. 지중해 바다를 접하고 있는 길고도 좁은 이 땅을 배경으로 YHWH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땅을 역사지리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1. 자국을 중심으로 한 민족관과 세계관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이건 자기 국가와 민족에 우선한 세계관과 민족관을 갖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가리켜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이나 일본을 왜놈이라 부른 것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런 사상은 현대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으며 팔레스틴의 주변 고대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집트 고왕국(the Old Kingdom) 시대의 고대 이집트인들도 자기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민족들과 국가들에 대한 저급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주전 2350년 경의 Uni 비문을 참고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나안 땅을 하리우샤(Hariusha)라 이름하였는데 이는 모래 땅에 사는 사람들의 땅(the land of the sand-dwellers)이란 의미이다. 이 표현은 이집트의 우월 의식을 배경에 깔고 가나안을 천하게 부른 대표적인 용어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주전 1950년 경의 시누헤 이야기 (Sinuhe story)를 참고하면 이집트인들은 자국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내용에 이집트는 백성들이 언제나 돌아가야 할 영원한 본향으로 나타난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역시 가나안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창세기 10장). 홍수 사건 이후 노아의 후손들은 가나안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셈의 후손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지역으로, 함의 후손들은 이집트와 그 주변 지역으로, 그리고 야벳 후손들은 시리아의 북쪽과 소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졌다. 열국의 장이라 불리는 창세기 10장은 비옥한 초승달 (Fertile Crescent)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들을 모두 열거하고 있다. YHWH께서는 빼어낸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기업으로 가나안 땅을 정하셨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읍을 건축, 토지를 개간하고, 양을 기르며 자손 대대로 생활해 왔다. 이스라엘 정착 시대부터 사사 시대를 거쳐 왕국시대를 지나 급기야는 나라를 잃은 지 수 백 년이 지난 후 다시 이 땅으로 돌아 온 아브라함의 후손들, 불의에서 떠나 공의로 돌아서도록 선지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친 곳이 팔레스틴이다. 복음은 팔레스틴에서 시작되었으며 구원이 완성된 곳도 팔레스틴이다. 비록 성경 시대에 가나안을 그린 지도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 역시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복음이 태동하고 완성된 곳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팔레스틴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한다.

2. 인류 문명의 시작
주전 3500년경 인류 문명이 태동되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인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의 나일강과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탄생된 문명은 근동이 세계의 역사를 주도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집트 역사학자인 브레스테드(Breasted)는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근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그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해마다 홍수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를 형성하는 기름진 지역을 지중해 해안평야를 포함 멀리 이집트의 나일 삼각지까지를 비옥한 초승달 (Fertile Crescent)이라 이름하였다. 페르시아만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둥근 활을 그리며 지중해 해안 평야를 가늘게 포함하는 이 지역은 근동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해마다 범람 시기를 거쳐 비옥한 토양을 이루며 결국은 정착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제공하였다. 비옥한 초승달의 북쪽은 매우 기름진 고원지대로써 양과 염소들이 자라기에 적합한 초원을 이루며 정착하기에 아무 결핍이 없는 삼림 지역이다. 히브리인의 조상들이 생활했던 (창 11, 행 7:2) 이곳에서 이삭은 아내인 리브가를 구하였다 (창 24:10, 19, 25:20).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삼촌 라반의 집에서 봉사한 곳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야곱의 대부분의 아들들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창 25:26, 46:15). 하지만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남쪽은 북쪽과는 달리 열악한 자연환경과 사나운 맹수들이 득실거리며 사막의 약탈자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역시 해마다 홍수가 범람할 때면 상류로부터 운반된 기름진 토양이 강 좌우로 넓게 형성된다. 홍수 때에 물이 미치는 지역까지는 사람들의 정착이 가능하지만 물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부터는 사막으로 남았다. 나일강의 상류지역인 남쪽으로 올라갈 수록 경작지의 좌우 폭이 좁아지며 사막과 기름진 지역을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홍수로 말미암아 약 1세기에 13cm 정도의 비옥한 토사가 쌓이는데 결과적으로 홍수는 경작과 정착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 주었다. 비록 강수량은 작지만 언제든지 나일강으로부터 샤두프 또는 사키야를 통하여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신 11:10). 샤두프와 사키야는 낮은 강으로부터 물을 둑 너머로 공급하는데 필요한 기구로써 고대인들은 경작지와 일반 생활에 필요한 식수를 얻는데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기구들을 이용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비가 적게 내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일강은 집을 짓는데 필요한 진흙을 공급하였으며, 도시와 도시를,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도로 구실도 하였다. 이것은 왜 이집트에서 바퀴 사용이 크게 발달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집트에서는 잘 닦인 도로나 강을 서로 가로지르는 다리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강을 중심으로 뱃길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3.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을 지닌 가나안 땅
그러나 비옥한 초승달 지역 가운데 가장 열악한 환경을 지닌 곳은 다름 아닌 가나안이다. 가나안에는 이집트의 나일강이나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과 같은 큰 강이 없다. 몇 개의 작은 시내 (요단강, 기손시내, 하롯시내, 야르콘강, 악어강)가 있을 뿐이다. 샘이나 우물 역시 매우 제한적으로 발달되었기에 도시 발달에 있어서 샘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가나안 땅 거의 전체는 비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단단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신11:11) 그나마 형성된 샘 역시 가뭄 때에는 완전히 말라버리는 뿌리가 깊지 못한 샘이 대부분이다 (왕상17:7). 그러므로 가나안 시대 이전부터 팔레스틴에는 예외없이 겨울에 내리는 비를 댐으로 막아 고인 빗물을 사용하였으며 각 가정은 웅덩이를 크게 파 겨울비를 가두어 일년 동안 가정에 필요한 식수나 종교적으로 필요한 정결수로 이용하였다. 더우기 양이나 염소들을 위한 물을 저수하기 위해 산 위에 웅덩이를 파는 경우도 있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 종으로 팔려간 요셉도 도단에서 물이 없던 이런 웅덩이 (창37:24, 렘2:13)에 던져졌고 예레미야도 같은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렘38:6). 웅덩이의 입구는 매우 좁지만 안은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입구는 부지 중에 사람이나 동물이 빠지지 않도록 늘 큰 돌로 막아두었다. 지금도 이스라엘 곳곳에서 이런 웅덩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농사는 전적으로 하늘의 비와 이슬에 의존하였으며 (신12:11) 사람들은 생활하지 않은 지역들을 개간하거나 정착하기에 적합한 여건으로 바꾸어가는 작업을 하였다 (수17:17-18, 사5:2). 대부분의 경우 관개에 의한 경작 활동을 기대할 수가 없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짧은 우기와 긴 건기로 가나안에서의 경작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여건을 기대해야만 했다. 그래서 가나안에서는 풍요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든지 아니면 YHWH를 섬기는 일이 요구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YHWH를 섬기는 일은 곧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YHWH의 보상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비를 내리시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너희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11:13-17). 3월말 또는 4월초 내리는 늦은비를 마지막으로 팔레스틴에는 이른비가 내리는 10월말까지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다. 6-7개월간의 긴 여름을 지내는 동안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는 서쪽 지중해의 영향으로 새벽에 내리는 이슬로 근근히 연명하게 된다. 해가 지면서 내리기 시작하는 이슬은 그 양이 마치 간 밤에 내린 비처럼 온 대지를 적시기에 충분하다. 이슬이 내리는 양은장소나 계절에 따라 차이가 크다. 해안지역은 여름, 내륙지역은 봄, 그리고 산지는 가을에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이슬은 이스르엘 계곡을 포함한 해안지역과 산지의 서쪽 기슭은 엄청난 양을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갈릴리 호수의 북쪽 훌레 계곡과 벧산 계곡 역시 많은 이슬이 내리는 대표적인 장소에 속한다. 하지만 사막이나 광야 지역은 밤에 내리는 이슬로 말미암아 땅의 기온이 공기보다 더 차가움으로 내륙이나 해안지역보다 더 많은 양의 이슬이 내린다. 해안지역에서부터 사막에 이르기까지 이슬이 내리는 일년의 날 수는 138일에서 250일에 달한다. 산지에서는 100-180일에 이른다. 이슬은 경작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남쪽 해안평야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지역은 수박이나 멜론을 재배하는 전형적인 장소로써 이것들은 건조한 기후에 잘 재배되는 작물들이기도 하다 (창27:28, 신33:28, 삿6:38, 삼하1:21, 왕상17:1, 사18:4, 미5:7, 슥8:12, 학1:10, 욥29:19).

기름진 지역 역시 매우 제한적이며 국토의 대부분은 황량한 사막과 광야가 대부분이다. 브엘세바에서 라피야에 이르는 성경의 네게브 지역은 강수량이 200mm에 이르지만 네게브 남쪽으로는 100mm 이하로 현격히 감소한다. 네게브 남쪽은 사실상 정착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물이 부족하기는 네게브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은 사막으로부터의 약탈자들 위협이 늘 상존하였다. 그러므로 정부의 강력한 군사적인 지원이 있을 때 비로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삼상30) 잦은 가뭄은 와디의 바닥에 발달된 일부 샘을 통해 해결되었지만 이것 역시 부분적이었다. 겨울에 갑자기 내리는 빗물을 가두어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되었다 (시126:4).

중앙산지의 동쪽 대부분은 유대 광야로써 이곳은 준사막지역에 속한다. 중앙산지의 분수령으로부터 요단계곡까지는 16-20km에 불과하지만 고도의 차이는 1000m 이상되며 강수량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곳은 대표적인 비그늘 (rain shadow)지역에 속한다. 중앙산지의 분수령을 넘자마자 강수량은 급격하게 감소하며 예루살렘의 연간강수량은 600mm에 이르는데 반해 사해 북단에 위치한 여리고에 이르러는 150mm로 감소한다. 지금도 예루살렘에서 동쪽 사해 방향으로 차를 몰고 길을 나서면 광야에서 생활하는 베두윈들과 양을 치는 목동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유대광야는 양을 치는 대표적인 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시편 23편의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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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