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 계획 (4)

구속의 역사 속에 우뚝 서 있는 네 번째 봉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또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고 축복의 약속으로 그와 맺은 언약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셨던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새로운 구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새로운 민족을 일으켜서 하나의 신정국가를 세우시고, 그 나라로 하여금 땅 위의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위하여 제사장 역할을 하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축복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5절, 6절). 노아의 한 가족을 통하여 형성된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 파멸의 길로 달음질치는 것을 막고, 하나님의 의도하신 생명의 축복이 모든 민족과 나라들로 넘쳐 흐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고 그와 일방적인 축복의 언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12장 1절-3절).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아브라함 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성경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희귀할 정도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부터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루에서 불러 내실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창세기 3장에서 12 장까지기록을 보면, 시간적으로는 확정하기 어려운 긴 인류 역사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져 지금까지 보존, 전달되어져 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과 분량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또 가인과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을 빼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은 아브라함 이 후에 드라마틱하게 바뀌게 된다.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은 자주 사람들 가운데 찾아 오셔서 말씀 하신다. 새로운 약속들을 주신다. 이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 그 빈도수의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절정을 이룬다.

역사가 종말을 향하여 나아 갈 수록 인간 세계 속에 말살되어져 가고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이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실존을 알리심과 동시에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파멸의 위험과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류가 하나님께로 돌아 오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노아 때와는 또 다른 구속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신 것이다.

네 번째 산봉우리에서 앞을 향해 올려다 보면 눈에 들어 오는 것이 모세를 통하여 이제 막 하나의 나라로 태동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부르시고 그에게 두 돌판을 주셨던 사건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 나타나는 다섯 번째 산봉우리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해방자요, 구속자요, 그들의 새로운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이 세상 민족들과 나라들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시고 선포하신 것이었다. 이 법은 출애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의 사건을 전제로 하여 은혜를 베푼자의 입장에서 은혜를 받은 자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십계명은 은혜를 베푼 자가 은혜를 입은 자에게 최소한으로 기대하는 요망 사항들이다. 이 요망 사항들은 오늘 날 흔히 말해지는 “율법주의”와 맞물려서 신앙생활에 많은 오해와 혼동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쉽게 말하면 이 요망 사항들은 은혜를 베푼 하나님을 알아 줄 것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도리들로 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요망 사항들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라고 하는 말로 요약 했다. 이 요망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를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요망 사항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베푼자에게 감사하며, 그의 뜻을 존중하며 산다는 말이 된다.

다섯 번째 산 봉우리에서 역사를 돌아다 보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한 민족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난다. 요셉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격리 된 삶을 살게 하시다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출애굽 하게 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순결성을 유지하게 한다. 마침내 그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정체성을 확인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법을 제정해 주신 것이다. 한 나라로 보면 십계명은 신정국가로 세움을 받은 이스라엘의 헌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다섯 번째 산 봉우리에서 앞을 향해 올려다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보인다 (사무엘하 7장 4절 -13절). 여섯 번째 산 봉우리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정국가의 백성으로서 자리매김을 해 갈 것을 보여 주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기보다는 인간 왕을 통치자로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시고자 했던 메시야의 모습이 아브라함의 언약 속에서는 언약의 씨로 계시되었다고 하면, 다윗의 언약 속에서는 왕의 씨로 계시되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언급할 때는 예수를 아브라함의 씨로 (갈라디아서 3 장 7절-9절), 하나님 아들을 언급할 때는 예수를 다윗의 씨로 (로마서 1 장 2절 – 4 절) 지칭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시작하면서 예수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태복음 1장 1절)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죄성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간 왕이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의 은총 속으로 나아 가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초림의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왕으로 오셔서 인간 왕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 내셨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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