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 계획 (3)

여인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의 지평에서 바라 볼 때,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산봉우리와 같다고 했다. 성경은 이런 산봉우리에 해당하는 굵직 굵직한 하나님의 구속 활동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때로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 때로는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의 주제들을 따라 다양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굵은 붓으로 산 봉우리를 하나씩 찍어내듯 그려내고 있는 이 산봉우리들이 여인의 후손에 대한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초림까지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는 것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가 여인의 후손인데,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여인의 후손이 갖는 예언과 성취적인 요소들은 이미 살펴 보았다.

둘째가 노아와 맺은 언약이다. 물로 인류를 심판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어떤 생물이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 하시고, 그 징표로서 무지개를 주셨다 (창세기 9장 9절-16절).

노아와 맺은 언약의 산 봉우리에서 시간을 돌아다 보면, 타락 이후 사람들이 죄성으로 말미암아 극도로 피폐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말의 은총을 베푸셔서 노아의 가족을 구속 계획 속에 남겨 두신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 인류 역사는 거기서 막을 내렸을 것이다. 타락 이후 노아 때까지의 역사는 인류의 확산 못지 않게 죄와 악의 확산이 인류를 파멸의 길로 나아 가게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들려 주시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 사람은 그대로 두면 죄성으로 말미암아 악화 일로를 달리다가 공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가 바벨탑 사건이다. 바벨탑 사건은 노아의 가족을 근간으로 새로 시작한 인류 조차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촛점을 맞춘 삶을 추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에 촛점을 맞춘 삶을 영위한 나머지 자구책을 찾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류로 전락한 것을 보여준다.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담과 이브에게 말씀하시듯 축복하셨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창세기 9장 1절, 7절). 그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호흡 있는 것들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흐터져 나가 세상을 가득 채우기를 거부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는 일이 없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했다. 대신 그들이 한 것은 새로운 구심점이 될 뿐만 아니라 또 다시 홍수가 온다 할찌라도 그들 중 얼마를 생존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질만한 높은 성, 바벨탑을 쌓기로 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그들의 악한 의도를 중단 시키시고, 그들을 세상에 흐트시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한 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총과 심판을 동시에 나타내 보여 준다. 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 사건은 바벨탑 공사를 중단 시키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던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해석하여야 무리가 없다.

이 세번 째 봉우리 위에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노아의 가족을 통하여 새롭게 시작한 인류 역시 죄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죄성을 이기고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에 촛점을 맞추고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인류에 대한 애착을 포기 하지 않으셨다. 노아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여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그들에게 그들이 여전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에 편만하게 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단순히 말을 혼잡케 하여 세상으로 흐터져 나가게 하심으로.

이 세번 째 봉우리에서 장래을 바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네 번째 봉우리가 보인다. 이 두 산 봉우리 사이에 펼쳐진 인간 역사는 사람들이 노아 이전 시대의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인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세상으로 흐터져 나가지만, 상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은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져 간 것을 보여 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아브라함 역시 우상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루에서 불러 내실 때 이 세상에는 노아와 같은 사람 조차 하나 남아 있지 않았었다고 하는 추론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속하시려는 선한 계획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때와는 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구상을 갖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루에서 불러 내신 것은 그 구상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을 내 디디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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