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지금으로 부터 반세기 전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미 공군 B29 폭격기가 나가사키 상공에서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애꿎게 아내마저 잃고, 본인도 오른쪽 두부동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이야기다.

그는 의대 병원 방사선과 전문의로, 아내를 잃고, 열 살 난 아들 마코토와 네 살짜리 코흘리개 딸 가야노를 힘겹게 키우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변함없이 베풀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지 않는 날이면 멀리 무의촌을 찾아다니며 병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그것은 원폭으로 도시가 폐허되기 전부터 해오던 그의 삶이었다.

또한 느닷없이 당한 원폭 투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지만 두려움에 떨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구호 지휘자로 나서서 그때의 상황을 정리하고 세계 의학계에서는 최초였던 <원자폭단 구호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가사키 대학 학장에게 제출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목적은 첫째, 원폭의 진상 기록은 역사, 문학, 국제법, 의학, 물리, 토목공학, 종교, 인도주의 문제의 자료로서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둘째,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외침을 피폭 생존자들이 한 목소리로 계속 외치는 일이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후에 병석에 누워 운신조차 어려운 상태에서도 <원자병과 원자의학>이라는 연구 논문을 학회에 발표했다. 이는 방사선 전문의에 피폭 체험까지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그 같은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삶과 박애정신이 널리 알려져서 일본열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조그만 항구도시인 나가사키를 찾아오는 명사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대한 여인 헬렌 켈러, 교황이 일부러 위문 특사로 파견한 대주교, 심지어는 일본 천황까지 달려와 그의 손을 잡고 격려했다. 시민들은 영원한 ‘나가사키 명예시민’의 칭호를 그에게 바쳤다.

하지만 방사선 전문의로서의 직업병이라 할 백혈병에 걸려 3년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를 받고도 원폭 투하 후 5년을 더 살다가, 결국 두 자녀를 남겨두고 43세의 한창 나이에 귀천한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