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 계획 (2)

“계획”을 한다고 하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바라 보고 앞으로의 일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싯점에 서서 장래를 바라보듯 바라 본다면, 그것은 마치 평지에 서서 눈 앞에 놓여져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평지에 서서 눈 앞에 산봉우리를 올려다 보면, 그 산 뒤에 있는 다른 산봉우리들을 볼 수 없다. 눈 앞에 있는 산봉우리에 올라 가서 산 뒷면을 바라보면 산 아래 구릉들을 볼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우뚝 서 있는 더 높은 산봉우리가 있다고 하면 그 산봉우리 뒤편에 놓여져 있는 경치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도 실제로 무엇이 나타날지를 예측할 수는 없다. 이 산 꼭대기로부터 다음 산 꼭대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지, 그 사이에 강이나 호수가 있을 지, 산등성이를 이루고 있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몇 개나 될지 하는 것들은 다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산꼭대기에 오르기까지는 실제로 그 상황을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역사라고 하는 시간 선상에서 하나 하나의 정상을 이루고 있는 싯점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전개되고 펼쳐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죄인의 자리에 선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장래 보내주실 구속자에 대한 약속은 “여인의 후손”(창세기 3장 15절)이었다. 물론 이 여인의 후손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였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점진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주어졌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여인의 후손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했던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믿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의 자리에서 보면 어땠을까? 그들은 이 여인의 후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 위에 나타나게 될 인물일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여인의 후손이 구원자로 보냄을 받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그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서 있던 역사의 지평에서 미래를 내다보면, 이 여인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첫 번째 산봉우리이다. 신학계에서는 통상 이 “여인의 후손”에 대한 말씀을 성경 역사 첫부분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라고 하여 “원시복음”이라고 부른다.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 메시야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인지를 암시라도 하는 것처럼 이어서 상징적인 행동으로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 만들어 입히셨다 (창세기 3장 22절).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 그들이 스스로 벗을 것을 알고 순간적으로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나뭇잎으로 된 옷을 벗겨 내시고, 가죽으로된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다.

여기서 가죽옷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하나는 구원이란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수치를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가리워 주셔야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수치를 가리려고 하는 노력은 마치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는 것과 같이 일시적일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덮어 주시는 것은 마치 가죽으로 옷을 해입은 것만큼 영구적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렸다고 하는 것을 전제하는데, 하나님의 구원은 본질상 생명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아담과 이브가 잃은 것은 생명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잃어 버린 생명을 다시 얻는데는 또 다른 생명이 필요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짐승을 죽여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힌 것이다. 같은 맥락 위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부터 구약에 나타나는 전반적이 제사 제도를 이해 할 수 있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던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을 대속물로 십자가 위에 내어 주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쉽게 설명이 된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 제도들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표상들이었고, 예수님은 그 제사 제도들이 예표하고 있는 표상의 실체였다.

한 마디로 구원은 전적으로 생명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여인의 후손으로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찾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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