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두 사람이 만드는걸 /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 사랑은 아무나 하나 흔히 하는 얘기가 아니지 / 만나고 느끼지 못하면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노래를 듣다보면 ‘사랑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큼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만큼 노력과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집회를 해도‘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집회’를 개최하면 거의 모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꼭 우선순위라는 생각이 깊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엄청난 특혜가 제공 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정부에서‘사람을 사랑하는 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세금의 혜택을 주며,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주택을 한 채씩 무상으로 공급하여 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람 사랑할 일이 없을까 하여 찾아 돌아다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잘 묵상해 보면 사랑하는 일에는 엄청난 특혜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일서 4:12)”

요한의 설명은 아주 명쾌합니다.“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사람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경험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능력이 체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절대특성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먼저 사람에게 다가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4:9)”그 사랑은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그저 귀신을 쫓는 무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큰사랑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신음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는 한 어린아이가 예수님을 믿는 고모와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고모, 왜 정면의 벽에 "더하기(+)"가 붙어있어?" 이 아이는 강대상 뒷벽에 붙어있는 십자가를 "더하기"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고모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습니다. "너 예수님 알지? 저 "더하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더해 주셨고, 구원을 더해 주셨고, 기쁨과 즐거움을 더해 주셨다는 표시란다."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인생들에게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더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며 품음으로 사랑이 가져다주는 특혜와 의미를 깊이 있게 느끼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그렇기에 힘껏 심호흡을 하고 크게 한번 외쳐봅시다.“여러분을 뜨겁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