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 있는 대학생 아들이 웬일인지 집에 온다고 연락을 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는 일이 없고, 메시지를 남겨도 전화 하지 않는 아들이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며 집에 온단다. "왜 연락이 없었어?" 나도 텍스트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응? 바빴어." 간단했다. "왜 집에 오는거냐? 돈 필요하냐?" 나의 퉁명한 질문에 "어머니날이잖아!" 아들은 대답했다. 비록 텍스트로 오간 것이었지만, 최근 들어 아들과 가장 길게 한 대화였다. 연락도 뜸한 아들에 대한 꽁한 마음이 간단한 텍스트 메시지로 눈녹듯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날을 기억하고 있는 아들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나는 어머니날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나가곤 했었다. 어머니날에 엄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서 바치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몇 번 훈련시킨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직도 아이들은 어머니 날은 기억하고 당연히 선물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선물을 하나 안 하나 확인한다.

내가 옆에서 봐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이다. 헌신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엄마의 자식 사랑은 참 대단하다. 이북에서는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부르는데, 자식 하나를 젖떼기까지 키우는데 어머니의 손이 오만 번 간다는 뜻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우리 아내는 아이 넷을 키우고 있으니 '이십마니'라고 불러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

아내가 코를 훌쩍거리며 재채기를 계속 한다. "아무래도 존귀가 옮긴 것 같애" 지금 11학년인 세째 아이가 열이 있고, 콧물에 재채기를 하던 생각이 난다. 이 말을 들은 세째가 "노 웨이!" 한다. 자기가 안 주었다며 발뺌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줬다는 증거가 있냐며 증거타령을 한다. 별거도 아닌 것 가지고 따지는 아들이 철이 없기는 없다. 엄마가 십분 양보하여 "maybe 10% 확률"라고 답하자 아들은 이내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maybe"한다. 그래도 미안했는지 엄마가 감기 기운에 일찍 잠자리에 눕자, 시원한 물 한 컵을 엄마에게 가져온다. 아내는 아들이 갇다 준 물 한 잔을 감격하며 마시고 이내 잠에 떨어진다. 아마 내일 거뜬히 일어날 것이다.

어머니 날이다. 오마니들의 오만 번의 사랑의 터치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자녀들이 적어도 오만 번의 안마를 해드려야 하는 날이 어머니 날 아니겠는가? 모든 '오마니'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와 격려의 갈채를 보낸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늘 즐거우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