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고도로 성장하던 한국의 개신교회는 80년대에 점차 성장속도가 둔화되더니 90년대에 이르러 정체 내지는 감소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맞이하게 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위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21세기에도 살아남아 발전하는 한국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까?

Ⅰ.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첫번째 위기는 교회가 이웃과 세상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는 데 있다. 교회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신의 교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지 이웃과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한국 가톨릭교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이 점에서 한국 개신교회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개신교회는 교세가 정체내지는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 가톨릭교회는 계속적으로 성장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 핵심적인 이유는 가톨릭교회가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상대적으로 잘 감당하고 있다는 한국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의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된 이웃에 대한 찬란한 실천과, 명동 성당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가톨릭의 노력은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오늘날 가톨릭교회성장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는 복음전파에 집중해야지 가난한 이웃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하는 사회사업단체가 아니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이같이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별하는 이원론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성의 위기 배후에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는 이원론적인 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웃이나 장애인을 돕고 곤경 속에 있는 자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것은 결코 세속적인 일이 아니다.

누가복음 10장 27~35절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를 진실하게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영생의 길을 가는 삶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영생의 길을 묻는 질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이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영생과 직결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한국교회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구약의 율법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하나님의 법이었다. 구약의 예언서는 정의와 인권과 공정한 재판에 관한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한국교회가 참으로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가르쳐야 하고 이를 먼저 실천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세속적인 일로 규정하면 안 된다. 각 지역사회에 있는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한국교회가 스스로 개혁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