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4)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이후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는 원죄의 영향 아래서 짓는 자범죄들이다. 원죄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아담과 이브에게 있었다. 자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은 죄를 짓는 당사자들에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모든 사람에게 범죄하기 이전 아담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원리 위에서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장 17절)고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 장 23절) 이라고 말씀 하신다.

사람들이 죽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계신다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와 저주 아래 살고 있다고 하는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고 하면, 아담에게는 분명하게 주어진 계명이 있었지만, 그의 후손들에게는 그렇게 분명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명령들을 기록으로 남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 주게 될 때까지는 그랬던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모세 오경으로 알려져 있는 구약 성경의 첫 다섯 책에는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주신 계명이 613 개가 있다고 한다. “하라”라고 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명하는 계명이 248개이고, “하지말라”고 하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을 명하는 계명이 365개라고 한다. 중세 시대 랍비 중 한 사람인 마이모니데스가 분류했다고 하는 이 613개의 계명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 주어지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개념은 외면적이고 자구적인 것에서부터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재해석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피를 흘려야만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제 육 계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화를 내고 경멸하는 말로 수모를 당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살인죄에 해당한다 (마태복음 5 장 22절). 이런 관점에서 자범죄에 해당하는 범주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악화시키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의롭게 성숙해 가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 오기를 원하신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제할 때,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로마서 14장 23절).

둘째가 성경에 명백하게 알려져 있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으로 주신 계명들은 모세 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크게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구분 하는데, 물론 제사 제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의식법은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도덕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민법은 도덕법의 연장선 위에서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측면들이 있다고 해석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신 계명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계명들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죄가 된다는 점이다.

셋째가 행위를 유발하는 마음의 동기이다. 겉사람인 몸의 행동은 속사람인 마음의 통제 하에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동기를 놓고 볼 때,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죄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르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기를 원하신다. 천사들과 아담의 타락은 피조물의 본분을 저버리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불순한 동기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창세기 3장 5절, 이사야 14장 12-14절, 에스겔 28:13-15절).

넷째가 행위의 결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어떤 행동이든, 결과론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든 행위를 성경은 죄라고 부른다. 일견, 바른 행위처럼 보일지라도, 그 행위로 말미암아 결과된 공로에 대하여, 그 칭찬과 명예가 행동의 주체인 천사나 사람이나 그 외의 다른 피조물들에게로 돌려지면 죄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결과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끝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따라 선을 추구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아름다우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과 같이 사랑을 따라 다른 사람에게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피차 진실하여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 속에서 사랑을 따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기 위하여 선을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다.

물론 이 외에도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죄에 대한 범주를 세분화 하는 것은 가능하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서도 개인마다 깨닫게 되는 죄에 대한 인식이 다양한 만큼, 죄의 범주를 정하는 것도 다양 할 수 있고, 그렇게 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나름대로 그런 분류 작업을 해 보는 것이 죄를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성경이 죄라고 부르는 것을 크게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 것은, 죄가 단순히 어떤 특정한 몸의 행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존재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영적인 면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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