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 중에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 처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좀처럼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응답 없는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말 기도 응답이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수많은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최근에도 아주 구체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은 분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저와 그분 모두 하염없이 울었던 일이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새해에 제출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새벽에 기도하면서 기도가 응답된 것들을 체크하고, 날짜와 응답 내용들을 적어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체적으로 기도 제목을 내신 분들의 기도가 많이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기도 응답을 해주고 계신데 내가 조급해서 기도 응답이 없다고 불평을 했구나!”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조급함입니다. 기도하면 당장 응답이 올 것을 기대하고, 즉시 응답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을 늘어놓고 기도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급하지가 않으십니다. 기도 응답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과정 가운데에 얻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응답을 기다리면서 인내를 배웁니다.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믿음을 배웁니다. 절망 가운데에서 소망을 배웁니다. 위기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거절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간 부모들도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주지 않습니다. 유익 대신 해가 되거나,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에 관심을 잃을 것 같으면 안 된다고 거절합니다.

이제 저는 기도 하다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응답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원해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니까 구체적으로 기대를 갖고 기도한다. (2) 응답이 지연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하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 것을 확신한다. (3) 기도가 거절되었을 때에는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고백한다. (4)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은, 이 세상뿐 아니라 천국을 포함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 것임을 명심한다.

저는 이번 고난 주간 동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이사야 53:3)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아프신 분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치유 기도를 할 예정입니다. 수요일부터는 3일간 금식하면서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정말 응답이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