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3)

죄는 일반적으로 원죄와 자범죄로 구분한다. 원죄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첫 번째 죄를 가르킨다. 자범죄는 타락 이후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또는 부지중에 짓는 모든 죄를 가르킨다. 일상적으로는 알고도 짓는 죄, 모르고도 짓는 죄, 고의적으로 짓는 죄, 부득불 짓는 죄, 능동적으로 짓는 죄, 피동적으로 짓는 죄, 자의적으로 짓는 죄, 타의에 의하여 짓는 죄, 등 다양한 명칭으로 죄에 대한 성격을 구분한다. 이런 죄의 측면들을 성경에 비추어 더 깊이 살펴 보기 전에 죄에 대하여 잘 못 생각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로, 죄는 피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종종 몸에 흐르는 피 속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몸 속에 흐르는 피와 죄는 동질적으로 상호 포함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람의 몸 속에 흐르는 피(혈)와 몸을 이루고 있는 살(육)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은 성경적 사실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 그러나 그것은 원죄의 결과로 몸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의 한 현상이다. 몸이 죽는 것은 피 속에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몸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피 속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연상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예는 타락한 천사들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늘에서 쫓겨나 인간 세계 속에 내려온 존재들이다. 천사들에게는 사람의 몸과 같은 물질적인 몸이 없다.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물질로 구성된 몸이 없다는 것은 살이나 피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피가 없어도 범죄한 천사들에게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지움을 받을 만한 죄가 있다.

둘째로, 죄는 물질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한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질을 악하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육체는 죄악된 것이 된다. 육체를 죄악시하면 신앙생활은 쉽게 금욕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물질 세계를 악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와 연관되어 나오는 물질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다라” (창세기 1장) 이다.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선하다,” “착하다,” “좋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세계를 보면서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이라고 찬송을 부르며 경이로움에 사로잡힐 만큼 만물은 아름다운 곳이 많다.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물질 세계가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 것은 원죄와 더불에 세상에 들어온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지, 물질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죄악되기 때문이 아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장 20절, 21절)이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나, 입으로 들어 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마태복음 15장 11절, 18-19절)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더 명백해 진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과 같은 죄악된 것은 물질(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 곧, 영혼, 속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셋째로, 죄는 유한성이나 연약성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는 타락 이전에도 유한한 존재였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선악과의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될 때까지는 죄가 없었다. 유한하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뜻이다. 연약하다는 것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유한성이나 연약성 때문에 시험에 들고 결과적으로 죄를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을 동일하게 대하고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만 이해하여도 이런 점은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끝으로, 죄는 죄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그 죄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 곧, 속사람의 지적 활동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가령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적질에 해당하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도적질이 무엇인지 이해 한 후에,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개인적으로 도적질 할 것을 도모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부추켜서 도적질 할 것을 모의한다면, 그런 도모나 모의가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도적질을 한 것과 같이 간주된다. 머리 위로 날아 가는 새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날아 가던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한다고 하면 죄라고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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