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의 전 생애가 응축돼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이 한 주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바이블 맵>, <성경 대특종> 등으로 성경 전체에 대한 조망을 해온 재기 넘치는 작가 닉 페이지(Nick Page)가 이번에는 이 일주일간을 <가장 길었던 한 주(The Truth about Jesus’ Last Days)>에서 오롯이 복원해냈다.

저자는 “2천년 전 그때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세밀하게 예수의 행적을 그려 나간다. 다 드러나지 않는 일주일간의 사건들을 재조망하기 위해, 그는 예수님이 그 전해 겨울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때부터 추적을 시작한다.

물론 저자는 사복음서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었지만, 저자는 거기에 ‘상상력’을 입혔다.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이렇게 항변한다.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데도 이야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역사, 적어도 읽을 가치가 있는 역사 중 사실 관계만 담고 있는 역사는 없다. 고고학과 고전학처럼 명백히 ‘사실적인’ 근거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검토하고 어루만져 마음 속으로 휘저어본 다음 새로운 가능성과 혼합해 새 유형으로 분류해야 한다.”

우려와는 달리, 저자의 상상력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폭력적 사랑 이야기를 가져다가 무시무시한 폭력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충실히 사용됐다. 특히 ‘예루살렘 성의 광경과 소리와 냄새’를 탐험하게 도와주는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가 관련 성경 본문을 수십번 읽어도 알기 어려운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풍습과 분위기 등을 연관시키며 그 사건의 의미를 더욱 풍성히 다가오게 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머리카락’이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의미나, 예수가 예루살렘성에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풍경’의 함의(含意), 발을 씻기신 예수님이 어느 정도까지 낮아진 것인가 등 예수님이 일주일간 했던 모든 말과 행동에 담긴 뜻을 더욱 강렬하게 전한다.

상상력 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의 각종 문헌과 바울 서신, 예수님과 같은 시기 살았던 요세푸스나 필로의 저작, 주후 200년 전후 랍비문학인 ‘미쉬나(Mishnah)’까지 참고했다.

그는 이를 통해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다락방이나 예루살렘 입성에 사용된 나귀를 이전부터 주도면밀하게 ‘예비’해 놓았다거나, ‘베드로의 부인’ 사건이 일어난 성전 뜰까지 베드로와 함께했던 ‘또다른 제자’가 가룟 유다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곁들인다.

무엇보다 이 시기 대제사장과 빌라도 총독 등을 둘러싼 권력관계 등 예수의 십자가형을 계획하고 집행한 ‘정치적 음모와 배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죽여야 했는지, 정말로 유대인들 대부분이 예수님을 못박는 데 찬성했는지 등을 상세히 살핀다. 특히 심문과 재판, 십자가형 집행과 돌아가심, 장사지냄까지 ‘33년 4월 3일’ 있었던 일들을 눈으로 보듯 그려낸다.

닉 페이지는 그 이후, 4월 5일 있었던 ‘귀환(The Return)’에 대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역사라는 관점을 은밀히 제쳐놓고 복음서들의 묘사를 신화나 문학, 은유로 남겨두려는 유혹을 받지만, 문제는 복음서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며 “복음서들은 갑자기 다큐멘터리였다가 공상과학으로 둔갑하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담담히 이를 실제 사건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사건들에 대해서도 복음서들은 각각 다른 세부 사항을 제시하고 강조하는 부분도 일치하지 않지만, △증인들로 여성들을 들었고 △진술들 간에 혼선이 있으며 △진술들이 정직하고 △빈 무덤과 관련해서 어떤 이견도 없으며 △초대교회가 실제로 무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바울의 증거가 있으며 △너무 불가사의해서 믿기 어려운 부활을 주장하고 있고 △초대교회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등에서 당시 제자와 성도들이 그러했듯 부활을 영적이거나 은유적 사건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여기에 “부활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초대교회의 성장이나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보전된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예수님에게서 부활을 떼어내면 실패만이 남고, 이것이 가장 길었던 한 주의 전말”이라는 해석을 곁들인다.

사실 우리들은 고난주간은 ‘부활’이라는 결론을 늘 알고 맞이하기에, 예수님의 그 고통의 깊이와 넓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저자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들이나 날짜, 이론들이 아니라 한 사람과 그 분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라며 “참된 진실은 아무도 그리스도를 통제할 수 없고, 그 분은 우리가 산처럼 쌓아올린 이론들을 거침없이 침몰시키고, 사랑의 길을 걸어 결국 승리를 쟁취하셨다”고 선언하며 여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