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전도사님이 이발하러 왔습니다. 이발사는 이발이 끝난 후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주님께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을 고맙게 여긴 전도사님이 다음날 좋은 신앙서적 한권을 이발소 앞에 놓고 갔습니다.

그 다음날 경찰이 이발하러 왔습니다. 이발사는 이 경찰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수고 많이 하시는데 자신도 지역을 위해 봉사한 것으로 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맙게 여긴 경찰이 다음날 아침 도나스 한 박스를 이발소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국회위원 한 명이 다음날 이발하러 왔습니다. 이발사는 그 사람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국가를 위해 봉사한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이발사가 이발소 문을 열었더니 그 앞에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공짜 이발하겠다고 줄지어 서 있더라고 합니다.

이것은 받는 것만 좋아하고 해야 할 봉사는 하지 않는 정치가들을 풍자한 유머입니다만, 우리 인간의 본성이 대체적으로 이와 같지 않습니까? 누리는 축복에는 관심이 많지만 드리는 삶에 대해서는 인색한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감사를 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한 촌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너무 간곡히 애원하기에 그 불치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고침 받은 자들 중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물어 보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질문 속에 주님의 섭섭함이 묻어 있습니다. 받은 것은 열인데 드린 것은 하나 밖에 되지 않는 우리 마음의 무심함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문둥병자보다 더 누추한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죽음의 질병을 보배피로 씻어주셨지만 우리가 올려드리는 감사는 부족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수난주간"이 시작됩니다. 한 주간 새벽 제단에 나오셔서 주님의 고난과 은혜를 묵상하며 헌신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