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이웃되기재단(사무국장 박선근)에서 2011년 New American Hero를 발표했다. 주인공은 미 육군 의무장교인 존 오(John Oh) 중령.

오 중령은 아프가니스탄 미육군 야전병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몸에 박힌채 실려온 창 모스(Channing Moss) 일병을 생명을 걸고 구해 동료군인의 생명을 구하는 영웅적 행동을 한 미군에게 수여하는 ‘Soldier’s Medal’을 수상한 바 있다.

좋은이웃되기재단은 오 중령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신의 새로운 나라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영웅적인 봉사와 기여, 모든 미국인들에 귀감이 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존 오 중령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4월 16일 오후 7시 마리에타 르네상스 웨벌리 호텔(Renaissance Waverly Hotel)에서 열리는 한미우호협회 연례행사에서 진행된다.

한편, 좋은이웃되기재단은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미국 커뮤니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성원이 되도록 자극하고 한인계 미국인부터 시작해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그들의 유산, 가치, 자원을 더 나은 미국을 위해 활용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활동을 지난 2000년부터 해오고 있다.

(기사제공: 좋은이웃되기 운동본부)

<다음은 케이아메리칸 포스트에 보도된 존 오 중령의 일화>
“Everybody get out! (모두 나가!)”
2006년 3월 16일 아프가니스탄 미육군 야전병원에 실려온 창 모스(Channing Moss) 일병의 피범벅이 된 군복과 붕대를 자르고 부상입은 곳을 보자마자 군의관인 존 오(John Oh) 당시 소령이 외친 말이다.

모스 일병의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 밖으로 추진날개가 붙어있는 파이프가 삐죽 나와있었다.
오 소령은 순간 폭탄이 터지지 않고 모스 일병 몸 안에 박혀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소리쳤다. 폭탄이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뜻 밖이었습니다. 그가 헬리콥터에 실려왔는데 폭탄이 몸에 박혀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오 소령은 폭탄제거팀에 연락했고 이윽고 도착한 폭탄제거팀은 모스 일병 몸안에 박혀있는 폭탄은 주로 탱크를 공격하는데 사용되는 로켓추진수류탄(RPG)이라고 알려줬다. X-레이 검사결과 병실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의 탄두는 없었지만 모스 일병과 수술팀을 죽일 수 있는 폭탄 뇌관과 기폭장치가 몸 안에 박혀있었다.

미 육군 제10 산악사단 알파중대 소속의 모스 일병은 이날 아프가니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을 정찰하다 매복해 있던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미군차량인 험비(humvee) 지붕에 장착되어있는 총을 쏘는 사격수로 상반신을 내놓고 선채로 험비를 타고 있었는데 탈레반이 발사한 로케추진수류탄이 험비 앞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서있던 모스 일병의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박힌 것이다.

오 소령은 모스 일병 몸 안에 폭파하지 않은 로케추진수류탄이 박혀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육군 규정이 떠올랐다. 규정은 폭탄이 몸에 박힌 군인은 더 큰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 벙커 등에 두고 사실상 죽게 내버려두도록 밝히고 있다.

“그 때는 그 규정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나를 보고 말하고 있고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밖에 벙커에 두면 이미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죽게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야전병원 책임자인 오 소령은 다른 군의관과 의무병들을 모아놓고 폭탄제거 수술에 참여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규정을 어기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술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을 찾은 것이다. 1명의 다른 군의관과 2명의 의무병이 손을 들었다. 오 소령은 이들에게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수술실에 들어오도록 했다.

오 소령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3살 때 미국 메릴랜드로 이민왔다. 그는 1993년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육군장학금으로 1998년 뉴욕 메디컬 스쿨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있다. 2005년 11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배치된 후 4개월만에 그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불발탄 폭탄이 박힌 군인을 수술하는 드문 경험을 하게된 것이다.

수술은 오 소령의 인도하에 의무병들과 폭탄제거팀의 댄 브라운 중사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수술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의무병들은 수술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수술 중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브라운 중사가 톱으로 튀어나온 로케추진수류탄 꼬리 부분을 잘라내자 오 소령은 메스로 부상 부위를 절개했고 본격적인 폭탄제거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로켓추진수류탄을 몸에 들어왔던 방향 반대로 빼내는 것이었다.

오 소령은 수술이 시작되면서 수류탄을 빼내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케추진수류탄은 모스 일병의 왼쪽 골반을 부서뜨리고 장기를 심하게 손상시킨 채 박혀있었다. 수술팀과 브라운 중사의 긴밀한 협조로 골반 뼈에 끼어있던 로케추진수류탄 몸체는 수술이 시작된 후 2시간만에 브라운 중사의 손 안으로 빠져나왔다.

브라운 중사는 모스 일병의 몸에서 빼낸 로케추진수류탄 뇌관과 기폭장치를 들고 안전 벙커로 가져가 폭파시켰다.

그는 “로케추진수류탄를 폭파시킨 후 다리에 힘이 풀리며 풀썩 주저 않았습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마침내 해냈다. 우리가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에 감격했습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 소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술을 마치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무엇보다 수술실 문으로 다시 걸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 기뻤습니다”

모스 일병은 그 뒤 미국으로 후송되어 후속수술을 통해 회복되었고 아내와 두 딸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박힌 나를 살리기 위해 병원까지 후송한 파일럿, 수술해준 오 소령 등 많은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일평생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오 소령은 이 공로로 2007년 1월 비교전상태에서 동료군인의 생명을 구하는 영웅적 행동을 한 미군에게 수여하는 ‘Soldier’s Medal’을 받았다.

2009년 11월 중령으로 승진하고 현재 독일에서 복무 중인 오 중령은 모스 일병을 수술한 것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제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똑같이 했을 겁니다”

그는 지난 10월 15일 케이아메리칸 포스트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목숨을 건 수술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동료 군인들의 희생정신이 오히려 놀라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수술을 마치고 지금 그의 아내가 된 애인에게 다음과 같은 한줄의 이메일을 덤덤히 보냈다고 말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 로켓이 박힌 환자가 와서 수술해서 빼냈습니다. 모든게 괜찮아요”(Doing well. I had patient with rocket and took it out. Everything is fine)” 그의 애인은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베트남전쟁 때 오 중령처럼 로켓이 몸에 박힌 군인을 수술해 로켓을 제거한 적이 있다는 다른 선배 군의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고 그는 밝혔다.

한인으로 오 중령에게 미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아버지는 북한출신입니다. 한국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늘 말씀하셨죠. 미국으로 이민와서는 항상 미국시민인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오셨습니다. 저는 미국인이 된 것이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끝으로 한인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역생활여건 개선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미국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야전병원에 있으면 미군 사상자들을 매일 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