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시간 주에서 목회하는 롭 벨 목사가 “지옥은 없다”라고 이야기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때에 맞춰 ABC 방송은 한 설문조사를 통해 지옥의 개념을 믿는 미국인이 59%로 조사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벨 목사가 그렇게 주장한 논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의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었습니다. 결국 사랑이 심판을 이길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그의 말이 큰 파장을 가져온 이유는 첫째, 그가 신도 1만여명의 대형교회 스타 목사이고, 둘째 복음주의 계열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원한 형벌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새로운 시각이 아닙니다. 이 주장은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내재해 있던 한 논리인 보편구원론(Universalism)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보편구원론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이 사상은 18세기 John Murray에 의해 창시되었고, 1961년 5월, 북미의 자유주의적인 기독교 종파인 유니테리언 유니버셜리스트교(Unitarian Universalist Association of Congregation in North America)에 의해 지지되어 왔습니다.

사실 목사로서 이 논리는 상당히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임할 사후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천국에서 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커다란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혹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조금이나마 방탕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보편구원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엔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리가 있으면 자녀의 자리가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젖병을 들고 누워있는 부모에게 그것을 먹일 수 없는게 정해진 자리입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자녀가 집에서 기도하고, 부모가 대신 그 시험을 치를 수 없는게 정해진 자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도 정해진 자리가 있습니다. 물론 상상도 자유이고, 그렇기에 그 상상에 따른 주장도 자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누가 어떤 상상과 주장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정해진 자리, 하나님과 인간의 자리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곳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창조주인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피조물로서 그 정해진 자리를 존중해야 하는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우리 인간에게는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듣고자 하는 본능(Selective Hearing)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에 너무 감사하고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약을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무섭게 진멸하시는 심판자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성서는 사랑의 하나님만 보여주지 않고 심판자 하나님도 동시에 기록합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기술하는데 좋은 것으로만 꾸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은 하나님 스스로가 정하신 것이지 피조물인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부분만 선택해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정하는 순간 그 하나님은 내가 만든 헛된 우상일 뿐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겸손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이탈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 4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