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름 ‘평신도 선교사.’ 2009년 시작돼 지난 해 처음으로 3명의 선교사를 안수한 세계전문인선교회 애틀랜타 지부(이하 PGM, 훈련원장 김종관 목사)가 본격적인 평신도 선교사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중 우종인 선교사(피치트리 장의사 아시안 담당)는 아이티, 케냐로 파송된 다른 2명의 선교사와 달리, 애틀랜타 클락스톤 난민 사역을 위해 안수를 받고 구체적인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말씀과 삶 속에서의 괴리를 느끼기 쉬운 기독교인들. 우종인 선교사 또한 그런 기독교인의 한 명으로 성경공부와 단기선교를 섭렵하며 제자로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채워지지 않는 ‘2% 부족함’을 늘 느끼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신학공부를 했지만 소명이 아닌 단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랬던 그가 2년 전 PGM 총재인 호성기 목사를 만나 “Here and Now(바로 지금 여기서)”선교 전략을 전해 들으면서 새로운 선교의 꿈을 꾸게 됐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는 PGM의 가르침에 ‘바로 이거다’라는 깨달음이 온 것.

“이민자들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모두가 살아 가지만 삶에 쫓겨 사는 것과 선교사 마인드를 품고 살아가는 삶은 정말 다르지요. 하나님께서 한국을 떠나 미국까지 오게 하신 데는 하나님 계획가 섭리가 있는데,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의 현장이 선교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3세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우 선교사. 그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내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지 왜 내가 다른 이를 위해 사느냐’고 따질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이란 내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평신도 선교사가 되어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의 길은 정말 인간의 길과 다르다”라고.

그는 클락스톤에 위치한 다양한 국적의 난민 교회와 지역 선교와 섬김의 루트를 찾고 있는 한인 교회를 연결시켜 주는 사역을 구상하고 있다.

“애틀랜타에는 80여 국에서 온 20만 명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80명에서 200명으로 급성장한 버마교회를 방문했는데, 같은 언어(좀미어)를 사용하는 인도, 말레이지아, 버마에 선교사 5명을 지원하고 있었죠. 한국 선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하는 것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난민을 교육해 직접 자국에 파송하는 것과 난민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도 지역 선교의 큰 루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모든 것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사역하려 한다는 그. 피치트리장의사 아시안 담당을 맡으며 많은 인생의 끝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인생과 모르는 인생의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됐다는 우 선교사는 오늘도 “나 자신의 생각과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는 하늘에 남아지는 하루를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