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사람-인간의 구조 (3)

속사람의 구성요소를 겉사람과 비교하여 이해하면, 성경이나 일반 서적에서 속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과혼, 육과체의 관계는 체가 몸의 골격을 이루어 주는 형태에 관한 요소라면, 육은 몸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과 혼은 눈으로 식별되는 것이 아니지만, 혼이 체에 해당하는 형태에 관한 요소를 연상하게 해 준다면, 영은 육에 해당하는 혼을 이루고 있는 본질적 요소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영과 혼, 이 둘은 뼈와 살이 한 몸을 이루고 있듯이, 하나 일 수 밖에 없다. 성경에는 육과 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몸”에 해당되는 말은 있으나, 영과혼을 하나로 묶어 주는 “몸”에 해당하는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라는 말이 좋아 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심장”이라는 몸의 대칭어를 갖고 있어 적당치 않다. 성경이 속사람을 칭할 때, 때로는 영과 혼을 교대로, 때로는 영과 혼을 묶어서 영혼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속사람에 관한 묘사들을 겉사람인 몸의 지체들과 연관하여 말을 맞추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마음 (heart)과 심장. 이 둘은 마치 심장이 몸의 깊은 곳에 있듯이 마음은 속사람이 깊은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 할 때가 많다. 예례미야는 이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더 심히 거짓되고 부패해서 하나님 외에는 이 사람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고 탄식한다 (예례미야 17장 9절). 생각 혹 마음 (mind)과 머리. 머리는 몸을 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마음 먹은대로 몸을 움직인다고도 할 수 있다.

에스겔 선지자는 “굳은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돌의 마음”과 “살의 마음”이다 (에스겔서 11장 19절, 36장 26절). 신약에서는 마음이 완고한 것을 말하고 있는데, 완고하다는 것은 마음이 돌 같거나 굳은 살과 같이 감각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12장 40절, 고린도후서 3장 14절).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에서의 “마음”이 심장과 대칭되는 “마음”(heart)라면, 고린도후서에서의 “마음”은 생각하는 기능의 “마음”(mind)을 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속사람의 요소들이지만 겉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굳은 살의 현상을 들어서 속사람의 영적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이런 비교는 속사람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겉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몸의 묘사가 있다고 하여, 몸을 반드시 분석적 사고로 이해 할 필요가 없듯이, 영혼 역시 영혼에 다양한 묘사가 있다고 하여, 영혼을 분석적 사고를 가지고 해부학적으로 이해 할 필요는 없다. 몸은 몸이고 영혼은 영혼이다. 그리고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서 한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다. 몸도 “나”이고, 영혼도 “나”이다. 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넣어도 “내”가 쓰레기 통에 들어가고, 영혼을 쓰레기 통에 담가도 “내”가 쓰레기 통에 잠긴다. 마음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면 몸이 교회를 찾기 마련이고, 몸이 교회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기 십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하신 이 말씀은 인간 구조에 대한 말씀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를 강조하기 위한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이런 비슷한 말 법은 여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서에서 예수님도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7절) 고 대답하셨다.

일견 “목숨”이라는 말은 육체의 생명이나 호흡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데 속사람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숨”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프슈케”로서 다른 곳에서는 “혼”이라고 번역되었다. 같은 말을 한글 성경에서는 문맥에 따라 “목숨” 또는 “혼”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마음(heart)과 목숨(soul)과 뜻(mind)은 다 속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인간의 속사람이 마음과 목숨과 뜻, 이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문맥 상 “다하여”라는 말에 의미를 두고, 마음이든, 목숨이든, 뜻이든 온전하게, 나눔이나 갈림이 없이, 속사람으로서 온전하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있다고 이해한다.

또, 히브리서 4장 12절 이하에 나오는 “혼과 영,” “관절과 골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하나님의 말씀이 찔러 쪼개기까지 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반대로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것,” “사람 보기에는 하나인 것” 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누고 쪼개어 드러 낼 수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나오는 예들은 본질상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속사람과 겉사람의 상관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참으로 중요하다. 영혼의 하는 일들과 몸의 오관의 기능은 떼어 낼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속사람인 영혼에는 지,정,의의 세 기능이 있고, 겉사람인 몸에는 오관이 있다. 영혼은 몸의 오관을 통하여 정보를 제공 받는다. 영혼이 제공 받은 정보를 사용하여 몸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기도 하고, 허망한 것을 위하여 살기도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가르는 분깃점이 있다고 하면, 한 사람의 영혼(속사람)이 몸(겉사람)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느냐? 아니면 일신의 만족과 나름대로 자기만의 세계를 위하여, 혹은 허망한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착각하여 신기루를 찾아 헤메듯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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