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주부들에게 금요일 오전은 몹씨 바쁜 시간이다.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집을 깨끗히 청소하는 것으로 금요일 아침을 맞는다. 앞치마를 두른 주부들은 집안 구석 구석 먼지를 털고 돌로 깔아 놓은 거실 바닥을 가능한 물로 청소한다. 그리고 안식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수퍼마켓을 찾는다. 안식일에는 어떤 상점도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안식일 저녁 식사을 위한 준비와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느라 금요일 오전 수퍼마켓은 일주일 중 가장 붐비는 날이다. 오후엔 저녁 식사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며 틈틈히 자동으로 전등이 점멸되는 타이머도 확인하고 남자들이 회당에 입고 갈 세탁된 옷을 준비하기도 한다.

저녁 시간, 남자들이 회당을 다녀오면 온 가족은 식탁에 둘러 앉는다. 순수한 밀가루로 만든 안식일에 먹는 ‘할라’ 빵을, 포도주와 곁들어 만찬을 나눈다. 안식일에는 주로 창세기 2:1-3절을 읽는다.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세번 식사를 하는데 그 이유는 출애굽기 16:25에 기록된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 ‘오늘’이란 말이 세 번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히브리 주간의 일곱번째 되는 날로 금요일 해 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를 말한다.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은 자신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안식일을 지켰던 시간에 대한 기록을 참고하면: 디베랴는 낮은 곳에 위치함으로 다른 곳의 해가 지기 약 30분 전에 사라진다. 그러나 산 위의 동네인 쯔팟 (Zfat/ Safed)에서는 평지 보다 해가 더 오래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디베랴 사람들은 산 위에 사는 사람들보다 먼저 안식일을 맞게 된다.

Gemara에 따르면 안식일은 유대 모든 마을에서 나팔을 부는 것으로 시작되어 나팔을 부는 것으로 끝났다. 요세푸스도 나팔을 불어 안식일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 남쪽에서 나팔을 부는 장소가 표시된 석비가 Benjamin Mazar에 의해 발굴, 확인되었다..

예루살렘 박물관의 안식일 전시관에 전시된 물건을 설명하는 문구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더니 안식일은 유대 민족을 역사에서 지켜냈다’고, 역사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곤경에 처했든 그들은 안식일을 지켰다. 나찌의 유대인 게토에서도, 심지어 대학살 중에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다. 이같은 안식일 전통은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지켜가는데 구심점이 되었고 유대 민족이 살아남게 된 불굴의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유대인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역사에서 한 민족을 살려낼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계명을 따라 주일을 하나님의 날로 기억하고 예배하며 선을 행하는 마땅한 날로 지킬 수만 있다면, 한 가정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한 민족과 나라를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음은 분명하다고 나는 믿는다.

유대인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날인 안식일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를 주일과 함께 본다.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의 첫 기록은 창세기 2:1-3절에 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일의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을 마치심과 휴식하심과 안식일을 복되게 하신 날’이다. 이 ‘쉼’의 날인 안식일은 출애굽기 20:8절에 기록된 십계명에서 ‘그 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기억하고 지켜야 할 날’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안식일은 만나와도 관련이 있다. 안식일 전날에 유대인들은 평소보다 만나를 하루치 더 모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에 만나가 내리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안식일에 소비할 만나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과의 언약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출31:13). 그러므로 안식일은 ‘쉼’과 ‘언약의 관계’를 포함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법에 대해서, 이 날은 다른 날과 구별된 거룩한 날 (신5:12)이고 쉼과 기쁨의 날 (사58:13)이다. Philo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곡식도 베지 않았다. 성전에서는 안식일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수 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렸다 (민28:9, 대하31:3, 느10:33, 겔46:4).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이 새로 드려졌고 (레24:8, 대상9:32) 성전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안식일마다 교대하였다 (왕하11:5-9, 대하23:4).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안식일에 성전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노동으로 정하지 않았다 (마12:5). 만약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팔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면,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였다.

안식일을 범하면 신성모독으로 판단하여 사형에 처하였으며 (출31:14, 35:2) 돌을 던져 죽였다 (민15:32). 이 같은 내용은 미쉬나의 산헤드린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무지 또는 실수로 안식일을 범하였으면 속죄제 (sin-offering)을 드려 면제를 받았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안식일 법이 금지한 가장 무거운 신성모독에 해당하였다. 안식일에는 음식을 위한 불도 피울 수 없었다 (출16:23, 민15:32, 출35:3).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안식일 전에 등잔을 밝혔는데 이같은 내용은 미쉬나의 안식일 부분과 로마의 철학자인 세네카의 기록에도 찾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필요한 음식을 전날 요리하였고 빵도 전날 구웠다. 음식이 따뜻하게 보온되도록 그들은 음식 담은 그릇을 건초 더미나 나무 속에 묻어두었다. 이런 안식일 법은 유대 절기에도 적용되었다 (출12:16).

후대에 들어서는 노동의 의미는 더욱 확대 해석되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 행위도 안식일에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느10:31, 13:15-16). 성문을 닫고 여는 일도 금지되었으며 (느13:19) 안식일에 여행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출16:29).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로 여호수아 3:4에 근거하여 2000규빗으로 규정하였다. 공적으로 또는 생명의 위급한 일이 아닌 경우, 정한 구역을 넘어서면 엄격하게 처리하되 사십에 하나 감한 태형으로 다스렸다. 요세푸스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의 거리를 안식일에 알맞은 거리로 기록해 두었다 (행1:12).

랍비들에 따라 서로 다른 안식일 규정의 해석 차이가 있었어도 바리새인들은 매우 엄격한 안식일 교리를 갖고 있었다. 길을 가면서 밀 이삭을 자르는 행위 (마12:2, 막2:23, 눅6:1), 병자를 고치는 행위 (마12:10, 막3:2, 눅6:7, 8:14, 요9:14, 16), 자리 (bed)를 들고 가는 행위 (요5:10)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정죄받은 행위들이었다. 하지만 양이 구덩이에 빠졌을 경우에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건져내었다 (마12:11, 눅14:5).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쿰란 공동체들은 보다 엄격한 안식일 규칙을 갖고 있었다. 안식일 밤에는 성행위도 금지하였다. 미쉬나의 안식일 항목에는 노동에 대한 39가지의 항목을 정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물건을 운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하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의 의료 행위도 금지되었다. 뼈가 부러졌거나 탈구되었어도 뼈를 제자리로 맞춰서는 안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모든 회당에서 집회를 가졌다 (막1:21, 6:2, 눅4:16, 31, 6:6, 8:10, 행8:44, 16:13,17:2, 18:4). 집회에는 기도, 공적으로 토라를 낭독하고 해석 (눅4:16, 행13:27)하였는데 요세푸스의 ‘아피온을 반박하여’에서 이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요세푸스의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회당에서의 예배는 약 6시간 정도 소요되었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하곤 하셨는데 그 일이란 육체에 질병을 가진 자들, 죄인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일이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치유 (마12:10), 십팔 년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치심 (눅13:10), 그리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날도 안식일이었다 (요5:5).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일할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라’고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막2:27-28)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마12:12).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과 주일을 정리하며 이 날의 핵심적인 가치를 정리할 수 있다. 주일은 쉼이 있는 날이다. 다른 날과 구별된 기쁨의 날이며 이 날을 경건하게 보냄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육체적 노동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외적인 조건으로 주일을 지켰느냐에 대한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예배)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따라 선을 행하는 날 (경건한 삶)로 삼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멤피스장로교회 이주섭 목사(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