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에는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부분을 채워주던 사도들과 구제와 봉사로 육적인 부분을 담당하던 일곱 집사가 있었다. 이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었다. 이뿐 아니라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와 에디오피아 여왕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던 빌립 집사처럼 선교의 열정으로 충만한 전도자들이기도 했다.

본지에서는 경기침체 가운데 ‘믿음’을 전략으로 삼아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믿음의 기업을 조명한다. 세상에 맞닥뜨리는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도의 열정을 잃지 않는 이들의 눈물 섞인 아름다운 간증이 넘쳐나길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베스트셀러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다. 자신의 욕심을 주장하지 않고 내려놓았더니 하나님께서 더욱 큰 것으로 응답하셨다는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줬다. 여기 ‘애틀랜타 아카데미@하버드스퀘어’ 정만성 원장에게도 ‘내려놓았더니 채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고백이 있다.

지난해 아카데미를 3개로 확장하고, 회계사사무소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성공이란 수식어를 붙여주지만, 정작 그는 통장 잔고가 천 불을 넘어본 적이 없을 만큼 비움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성공이란 재물도 명성도 아닌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성공관을 투철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일까? 2년 이상 아카데미에서 원장으로 일했지만 가지고 온 급여는 총 5천 불도 되지 않는다. 적자가 나서가 아니라, 늘 선교사나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먼저 돌아보는 씀씀이 탓이다.

“혹자는 제가 아카데미도 갖고 있고 회계사도 하고 있으니 굉장히 부자이겠거니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 삶의 재정 철학은 하나님과 교회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이 선교사, 가족은 제일 마지막이에요. 제 것을 너무 많이 챙기면 분란이 생기거든요.”

그 삶의 철학을 따라 살다 보니 통장 잔고는 적지만 늘 필요한 만큼 채우시는 ‘공급자’ 하나님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자랑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할 수 밖에 없던 대학 시절 조차 정 원장에게 ‘부요’의 시절로 기억되는 이유도 철저히 공급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만성 원장은 모태신앙으로, 기도하는 할머니,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홀로 농사를 지으시며 2남 3녀를 키우신 어머니는 모자라는 일손에도 자식들의 주일성수만은 빠뜨리지 않으시던 분이셨고, 할머니는 늘 기도하시며 정 원장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정 원장은 대학에 입학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학생을 찾지도 과외비를 올려달라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돈이 올무가 될 수는 없었기에, 어마어마한 연봉을 제시하는 서울 입시학원의 강사 제의를 거절하고 1997년 무일푼의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붙들고 기도해 온 세 가지 ‘미국 유학, 하나님 마음을 닮은 아내, 교회 개척’은 때를 따라 하나 하나 이뤄졌다. 하나님과 꿈을 좇은 미국 행에서 미국 유학이, 신실한 아내를 만나서 두번째 기도제목이, 그리고 신앙의 멘토인 김성환 목사를 만나 교회 개척도 허락하셨다. 둘루스에 자리잡은 큰사랑교회가 마지막 기도응답이다.

정 원장에게는 아직도 기도하는 몇 가지가 있다. 30대에는 열심히 준비해 40대에는 돈을 많이 벌고, 50대에는 후배들을 양성해서 사업을 물려준 뒤에, 60대에는 선교를 가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기도제목이자 인생계획이다.

“차별되는 부를 달라”기도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그가 40세가 되던 해, 아카데미@하버드스퀘어를 선물처럼 주셨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 부대끼는 부가 아니라 ‘주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부’를 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다.

지금도 하버드스퀘어 아카데미에서 나오는 수익금 대부분은 선교사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이지만 장차 중국에 학원을 세우고 그 이익금으로 선교사를 돕고 싶은 꿈이 있다.

“저에게는 조직을 잘 세워서 융통되고 활성화됐을 때 욕심 가지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개척 멤버이지만 늘 뒤에서 섬기는 자로 남고 싶고, 어디든 주님이 가라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아직 어린 딸들을 위해서도 “육의 아버지를 의지하기 보다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는 정 원장.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기뻐했던’ 하박국 선지자 처럼 스스로 선택한 가난 속에 부요를 볼 줄 아는 신앙의 지혜가 더욱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