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 안에 위치한 성전산 (Temple Mount)은 주전 10세기 중엽 솔로몬에 의해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된 모리아 산을 말한다. 이후 솔로몬 성전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고 파괴된 성전은 주전 516년 스룹바벨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다. 그리고 약 500년이 지난 주전 20년 헤롯 1세에 의해 시작된 스룹바벨 성전의 대대적인 보수, 재건축 공사는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부분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리고 로마에 의해 파괴된 유대인의 성전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마음에, 성전산은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의 성전에 대한 시각은 유대인들의 성전 이해와 크게 다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보이는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일으켜 세우리라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성전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셨다 (요한복음 2장).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면서 보이는 성전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았다. 보이는 성전은 이미 파괴되어 사라졌으며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이 곧 성령의 전이라 하였다(고린도전서 3장).

주후 638년 아랍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705년, 당시 예루살렘을 통치했던 칼리프 Abd al Malik은 과거 하나님의 성전이 섰던 성전산에 오마르 사원 (Omar Mosque- Dome of the Rock)을 건축하였으며, 715년에는 칼리프 Walid가 성전 뜰에 알 악사 모스크 (Al-Aksa Mosque)를 완성되었다. 무슬림은 그들의 예언자인 모하메드가 꿈에 하늘로 여행을 출발한 곳이 성전산이라 믿고 있다. 모하메드는 꿈의 여행에서 알라 신을 만났으며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라는 이슬람의 계명을 받았다고 코란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성전산은 아랍인들에게도 유대인들 못지 않게 중요한 곳이다. 그들은 성전산을 유대인들에게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모든 아랍인들의 피가 다 흘리기까지 성전산을 지킬 것이라고 성전산 아랍지기는 말한다.

그러므로 성전산을 지키려는 아랍인과 자신의 성전을 지으려는 유대인 간의 충돌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지난 세기에 성전산을 두고 몇 번 충돌이 있었다. 1928년 대속죄일 (Yom Kippur) 때에 통곡의 벽을 방문했던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구역을 남자들이 기도하는 구역과 여자들이 기도하는 구역으로 구분하였다. 이 일을 두고 아랍인들 사이에 잘못된 루머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결국 그 루머로 말미암아 1929년 아랍인들의 폭동과 유대인 폭행으로 수 천명의 유대인들이 피신하였고 많은 유대인들이 사망하였다.

1948년 5월 14일,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독립하였다. 당시 성전산은 요르단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 군대는 성전산을 정복하였다. 성전산을 함락한 이스라엘 군대는 그 사실을 이렇게 발표하였다: 드디어 성전산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the Temple Mount is in our hands). 이로써 서로 다른 두 민족과 종교 간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이전에 비하여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유대인이 성전산을 차지했어도 여전히 성전산에는 아랍 모스크가 서 있고 성전산은 무슬림의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성전산으로 인한 충돌은 1996년 9월에 발생하였다. 당시 고고학자들은 알 악사 모스크 아래 터널을 발굴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발굴에 대해서 예루살렘의 아랍인들 사이에는 악성 루머가 흘렀다. 유대인들이 모스크를 허물고 성전을 지으려는 수작이란 것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폭동이 일어났고 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2000년 9월 28일 일어난 두 번째 인티파다 (Intifada) 역시 성전산 문제로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의 우익 정당인 리쿠드 당수였던 아리엘 샤론이 성전산을 방문한 것이 인티파다의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은 자살 폭탄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계속 이어져 결국 2002년 3월 28일 시작되어 4월 24일까지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자살 테러 집단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아랍 마을인 제닌 (Jenin)을 초토화시키고 탱크와 지상 병력이 투입되므로 세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의 이면에는 성전산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다.

지난 2010년 7월, 이스라엘 정부는 성전산에 대한 충돌의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였다. 7월 19일은 유대인들의 티샤 베아브였다. 이 날은 유대인들이 성전 파괴를 기억하며 슬퍼하는 날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레미야 애가서를 읽으며 금식을 하는 중에 이스라엘 국회 방송은 저녁 9시 30분 뉴스를 통하여 성전 건축을 희망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여론 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전 재건을 희망하는 이스라엘 국민의 수는 49%, 성전 건축을 원치 않는 사람은 23%, 그 외는 대답을 유보하였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앞으로 유대인의 성전이 건축될 것으로 예상한 반면, 39%의 국민들은 확실히 건축될 것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 정부는 성전 건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48%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는데, 27%는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글을 기고한 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했으며,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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