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사형수의 공포

“세번째 사형수는 56세였다. 생명보험을 들은 후에 아내와 네 아이들을 불태워 죽인 것이 발각되어 사형 언도를 받은 이였다. 그의 종교는 불교였고, 금강경, 반야심경, 천수경등의 불경들을 다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업보를 씻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좋은 업보를 쌓으려는 것일까? 수감생활 동안 그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영치금이 들어오면 남들을 위하여 쓰고, 흉악범들이 있는 그 감옥에서 화도 내지 않았다. 그는 교도소의 성자로 불렸다.

그런 그에게도 사형집행날이 왔다. 그의 죽음은 어떠했을까? 집행장에 오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다리가 풀어져 걷지 못함으로, 교도관들에 의하여 끌려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앞에 있는 밧줄을 보는 순간 자율신경이 풀려 주저앉았다. 자신이 선행을 베풀어준 누구도, 선행을 본 소장도 이 죽음에 대하여 어찌 할 수 없었을 때 그는 죽음의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혀 교도관들과 소장을 욕하면서 바지에 오줌을 싸면서 떨고 있었다.

소장이 사형 집행을 위하여 질문을 하자 이름을 말하였을 뿐, 본적을 묻는 순간부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횡설수설하였다. 법에 위배가 되었지만 소장의 직권으로 나머지 절차를 생략하고 사형집행을 시켜야 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묻자 그가 남긴 말은 얼굴이 뒤틀린 채 말한 ‘개새끼들아’였다.”

위에 살핀 이야기는 잘 알려진 교도관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 일부이다. 이 간증은 사형수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7언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힌트를 제시한다. 왜 그럴까?

암호 해독 포인트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첫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을 살피려면 몇 가지 암호 해독 포인트를 알아야 한다. 그 포인트들은 사형수가 경험하는 사형의 공포와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십자가의 실제 고통에 대하여 알아야 제대로 해독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의 첫 단어의 의미와, 이 말씀이 기도적 간구라는 사실, 그리고 이 기도의 시점,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용서의 관점과 더불어 창세기의 가인과 복음서의 베드로, 그리고 시편 109편을 알아야 한다. 이번주는 이들 중 다음 세 가지만 살피기로 한다.

십자가의 실제 고통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목요일 저녁에 자신이 유월절 마지막 양으로 처참하게 죽음으로 더 이상 유월절 만찬이 필요치 않음을 선포하신다. 이제 유월절 만찬이 아닌 새로운 성찬의 시작점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그런 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밤에 제자들과 기도하시다가 체포되셨다. 이후 제사장 가야바에게 밤새 심문을 당하셨고, 빌라도에게서 헤롯에게로, 그리고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져 심문을 받으셨다. 또한 빌라도를 통하여 심한 희롱과 채찍질을 당하셨고, 무거운 십자가를 언덕까지 지고 가셔야 했고,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박힌 채 세워짐으로 살이 찢기는 고통을 감당하시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시간은 현대 시간으로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렇게 6시간 동안을 십자가에서 매달려 고통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실제 고통의 흔적에 대하여는 저자의 다른 책 크로스 시크릿(요단 출판사 2009)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의 특징은 먼저 고통 자체가 너무 크기에 다른 것들은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을 호소한다. 또 인생을 저주하면서, 자신을 죽게 한 사건을 원통해 하면서, 자신을 죽음에 처하게 한 모든 이들을 저주하고 증오한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내리쬐는 땡볕에 혹은 벗을 몸을 찌르는 찬 바람에 몸을 떤다. 고통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피 냄새를 맡은 주변의 개미떼들은 온 몸을 기어 다니며 상처 속으로 들어간다. 또한 까마귀들이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때로 머리나 어깨 위에 앉아서 살을 파먹는다. 그뿐인가, 밤에 들짐승들이 와서 살을 먹는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죄인들은 오직 죽을 시간이 단축되기만을 소원하면서, 고통에 찬 비명과 증오에 찬 저주를 퍼붓게 된다. 일반적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들은 이틀에서 삼일간을, 혹은 거의 일주일을 십자가에서 매달려 천천히 죽어갔다. 또한 십자가형의 효과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 잘 보이는 곳에 세워 놓음으로써 처참한 전시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발가벗겨져 수치감이 최고치이지만,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수치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 된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형은 형틀이 있는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고문이었다. 밤새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과 저주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가장 천천히 죽이는 것,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고통을 오래 주는 것, 그것이 십자가였다. 그러므로 로마는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반역자가 당하는 고통을 뼈에 사무치게 알게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살펴 보아야 한다.

첫 말씀의 첫 단어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였는데 그리스어의 특성 중에 하나는 강조하려는 말을 맨 먼저 쓴다는 것이다. 십자가 칠언의 첫 말씀의 원어 순서를 보면 “파테르 아페스, 즉, “아버지여, 용서하소서”이다. 아버지를 부르는 것을 먼저 하시고, 그 아버지께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이다.

이 첫 마디에 대하여 먼저 살필 것은 이것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라는 것이다. 이 첫 마디는 넋두리가 아니었다. 아픔에 대한 호소나 절규도 아니고, 수치에 대한 모멸감과 분노와 복수를 위한 저주도 아니었고, 기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였다. 이것은 십자가형의 고통과 수치스러운 상황을 생각할 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주님은 늘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였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십자가는 그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예식의 자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이 기도가 아니었었다면?

두번째 암호 해독 포인트는 왜 이 기도를 드렸는가이다. 이 답은 이 기도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려면 이 기도를 드리는 사건 정황의 참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에 대하여 여러 차례 심판을 하셨다. 에덴에서의 추방, 노아의 홍수를 통한 당시 인류의 말살, 언어의 흩으심,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등을 우리는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이 징벌적 심판들은 모두 인간들의 심각했던 죄악에 근거한다. 엄청난 죄악이 있었고, 그 죄악에 대하여 징벌을 내리신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생각할 때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알아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인간이 한 최대의 악한 행동이 이 십자가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우주의 역사상 최악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노아 때 심판받은 사람들도 이와 같이 악하지 않았다. 사탄도 하나님을 반역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어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직접적으로 나서고, 직접적으로 죽인다. 인간은 이런 면에서 사탄보다 더 사악한 존재가 되었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은 사탄과 인간의 공역이었지만, 인간들이 주체가 되었다는 차원에서 인간의 사악한 타락을 변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전의 모든 죄악은 십자가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행한 죄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글을 교도관 박효진 장로님의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사형수가 죽음의 공포 가운데 욕과 저주를 내뱉는 것과 십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대조하여 보아야 한다. 그런 최악의 죽음과 고통 속에서 어찌 이런 기도할 수 있고, 어찌 용서할 수 있는지, 그 경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이 기도를 드리신 이유는 이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발생할 수 있는 경악스러운 심판을 면케 하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