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쿠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위약 효과' 곧 '플라시보'(Placebo)하면 대부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가짜약이 진짜약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이론이다.

쿠에가 '플라시보'의 힘을 실감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날 밤 환자가 약사인 그를 찾아왔다. 시간이 너무 늦어 병원에 갈 수 없고 아파 죽을 지경이니 약 좀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쿠에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어 병명을 알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인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포도당 알약을 조제했다. 그러고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이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겁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보세요."

며칠 후 길에서 만난 환자가 뜻밖의 말을 들려줬다. "선생님 그 약이 무엇인지 참 신통합니다. 알약을 먹고 깨끗하게 나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분명 환자에게 준 약은 가짜였는데….

쿠에는 실제 효능이 없더라도 이 약만 먹으면 완쾌한다고 믿음을 주면 신기하게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걸 깨달았다. '플라시보 효과'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라틴말로 '기쁘게 해주다'는 뜻이다.

아무리 가짜라도 확신을 심어주면 환자가 희망을 갖게 돼 엔돌핀이 듬뿍 솟아나는 모양이다. 자연치유 효과라고 할까.

쿠에를 찾아온 환자들은 불면증에서 관절염, 폐결핵 말기 증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에게 '플라시보'를 투약한 결과 놀라운 효험을 보게 된 것이다.

'플라시보'에 대한 믿음은 서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예로부터 아이들이 배탈이 났을 때 '엄마 손은 약손'하며 배를 문질러 주면 아이들은 금방 배가 아픈 사실을 잊어버린다. 엄마에 대한 믿음이 배를 아프지 않게 한 것이어서 따지고 보면 이 역시 '플라시보 효과'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복을 가져다 주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종교적 믿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고 '플라시보' 처럼 죽을 병도 살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인간의 두뇌를 '믿음의 엔진'으로 부르기도 했다. 건강과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사회의 불신 탓인지 요즘은 '플라시보' 보다 '노시보'(Nocebo.해를 끼치다는 뜻)가 더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나 싶다. 적절한 처방을 통해 조제된 약도 정작 환자 본인이 믿지 않고 의심을 가진다면 아무런 약효가 없다는 개념이다.

'플라시보'나 '노시보'나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믿음은 긍정적인 결과를(플라시보), 반대로 부정적인 믿음은 부정적인 결과(노시보)를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쿠에가 일반인들을 위해 처방한 '플라시보'가 있다.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I'm getting better and better everyday). 하루에 열번씩 반복해 외우면 긍정의 힘이 솟아나 삶이 바뀐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을 맞아 '플라시보'라는 긍정의 약을 먹어 보자. 우리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는 약, 내집을 장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 회사가 잘 돼서 연봉이 오를 것이라는 약, 글로벌 금융 파동으로 움츠러 들었던 경기가 되살아나 비즈니스가 잘 될 것이라는 약, 나와 내 이웃이 함께 행복해 지는 약….

2011년엔 기대와 희망 그리고 믿음의 '플라시보'를 한웅큼 삼켜보자.

박현일 기자, 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