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 교단대표 간담회’를 가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개신교 교단들과 천주교 대표들이 29일 ‘사회갈등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특히 최근 들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종교간 갈등’에 대한 입장을 담았다.

이 성명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 정교회 한국대교구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김정서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김종훈 감독,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김종성 목사, 구세군대한본영 박만희 사령관,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 전병호 목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박성배 목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최근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는 ‘종교간 갈등’이라는 큰 병폐에 대하여 서로 공감하며 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커다란 우려를 갖게 되었다”며 “최근 이러한 종교인들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불교와 개신교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는 이 문제가 ‘종교간 갈등’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사회적 갈등이 드러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본래 종교적 신념이란 인간의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바는 비록 그 형태와 내용은 다르지만 참된 행복과 평화를 찾는 순례의 여정에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 시대는 보편적 형제애에 뿌리를 둔 종교인들의 일치와 화합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최근 일부 보수단체의 조계사 난입 논란에 대해 “그러나 최근 종교적 신념이 보편적 형제애를 벗어나 일부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념에만 충실한 나머지 이웃종교에 대하여 공격적 태도를 갖거나, 종교 행위 속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무분별하게 드러내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더욱이 지난 12월 22일, 동지를 맞아 조계사에서 봉행된 동지법회에 난입한 군복 입은 무리들의 폭거를 보면서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고 했다.

이들은 “군복이야말로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는 신성한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정치 개입 중단’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드러냄으로서 오히려 군복의 상징적 의미를 모독하고, 순수한 신앙 행위에 전념하던 성직자와 신자들을 향해 폭언을 일삼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우리는 이 문제가 비단 불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며 “종교의 진리를 떠나서 수천년을 이어온 종교인들의 순수한 신앙 행위가 침범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어떤 정권이라도, 어떤 정치적 신념이라도, 종교의 순수한 신앙행위를 침탈해서는 안 된다”며 “신앙은 우리 종교인들이 순교에 이르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거룩한 헌신의 행위다. 이런 신앙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침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는 지난 12월 22일의 폭거는 단순히 어떤 단체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우리 종교인 전체를 향한 테러 행위라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우리는 마땅히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들마저 무너뜨리고 마는 이 시대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인간의 폭력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만행으로 나타났는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우리는 이런 폭력의 만행을 경계하는 태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함을 호소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로 가슴 아픈 불자 여러분들을 위로하고자 하오며, 이런 일을 일삼은 단체는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고 속죄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평화가 이 땅 위에 온전히 자리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협력하는 일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계사 난입 논란을 빚은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조계사에 난입해 행패를 부렸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이같은 성명을 낸 조계사측 관계자와 기사를 쓴 H신문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