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대 한인 여학생의 자살 사건의 원인이 우울증으로 밝혀지면서, 한인사회도 더이상은 우울증을 간과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역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50대 한인 여성의 일도 회자되면서, 한인 사회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한인 교회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울증은 예방이 가능한가, 어떻게 접근해 치유할 것인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등 쉽지 않은 과제들 앞에 우울증의 원인을 살펴보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상담가들의 조언을 통해 교회의 역할을 조명해 봤다.

우울증, 어떻게 오는 가?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이 거론돼 왔다.

먼저, 유전적 원인으로는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 있었던 경우는 정상인보다 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2~3배 더 높다.

심리적 원인으로는 다음의 특정 성격 소유자가 지목되고 있다. 내향적이며 조용하고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사람, 자신감이 부족하고 다소 의존적이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며, 허무감을 갖는 사람,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사람, 지나치게 의무감과 책임감이 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업무에 대한 열성, 철저함, 꼼꼼함 등으로 주위로부터는 착실, 모범, 성실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질서를 중요시하고 의리가 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사회적 원인으로는 도시화, 핵가족화, 개인주의, 업무 중심주의 등 현대의 복잡하고 스트레스 높은 사회 환경이 원인이 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더 잘 걸리는 이유는 생리, 출산 등으로 몸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스트레스를 풀 기회나 방법이 남성 보다 적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실직, 입시 실패, 가족의 죽음 등 일상 생활에서의 좋지 않은 변화가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경우와 같은 심각한 상실 경험,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 대인관계의 어려움, 신체적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애틀랜타 한인사회, 가정 불화가 주 요인
문화 차이, 상실, 사회적 영역 축소 등도 복병


한인회 산하 패밀리센터(소장 이순희) 가정상담을 맡고 있는 정소영 박사는 “활발하게 살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생활 영역이 한정되면서 좌절과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경우, 언어의 제약으로 사회 생활의 한계를 경험하고, 한국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문화 갈등, 이로 인한 부부나 자녀간의 관계의 원만한 소통 부재가 한인 사회 우울증의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사례 1

스와니에 살고 있는 40대 중반 한인 여성 김 모 씨는 한국에서 전문직종에 종사했다. 성공한 사회인으로 동시에 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로 살아가며 삶에 만족감을 느끼던 김 씨가 남편 직업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되면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점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남편은 옮긴 직장으로 더 바빠져 가정에 소홀해 지면서 자신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고 사회적 활동 영역도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풀 환경도 제공되지 않는 듯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지인도 적은데다 갈 곳도 마땅하지 않다 보니 우울감이 지속됐고, 결국 위장장애와 함께 온 몸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 사례 2

유학 차 미국에 온 40대 한인 남성 B 씨는 한국에서부터 영어실력을 쌓아온 탓에 미국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유학생활이 지속되면서 언어가 아닌 낯선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B씨를 억압하기 시작하더니 점차 가족들도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공부하는 것도 버거워졌다. 생활의 활력을 찾지 못하고, 공부하던 학교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더니 점점 혼자 있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기독교인인 B씨는 기도를 하고 교회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의미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위 두 가지 사례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경우 겪을 수 있는 우울증의 증상들이다. 그러나 이민 초기, 위와 같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인한 우울증을 극복한다 해도 가정 문제, 산후우울증, 학교 및 단체 내 따돌림 등 다양한 요인이 여전히 도사린다고 상담가 및 현장 목회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문제 드러내기 시작하면 절반은 치유된 것
가족과 친구는 상담가 되기 어려워, 꼭 전문상담자 찾아야


우울증 상담을 하고 있는 목회자 및 상담가들은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울타리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막상 누군가에게 문제를 드러내 말하기 시작하면 문제의 절반이 풀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우울증이 극에 달하게 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 혼자 뿐이라는 처절한 고독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슬픔을 함께 나눠주고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게 해 주는 상담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넋두리를 들어주는 식이 아닌 전문적 상담이 절실하다는 게 상담가들의 의견이었다.

치유상담 목회를 하고 있는 광야교회 유희동 목사는 “우울감의 원인은 본인이 찾지 못한다. 늪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있는 밧줄이 필요한 법이듯 우울증에 빠져도 자가 진단이나 자가 치료가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에 꼭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 전문 치료는 두 가지, 일반상담가에게 가는 경우가 있고 목회 상담가에게 와서 하는 신앙치료가 있다. 신앙과 정신치료를 병행하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정소영 박사도 “가까운 친구관계나 가족은 상담가가 될 수 없다. 자신의 비밀이나 마음 상태를 털어놓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꼭 전문 상담가를 찾아야 한다”면서 “상담은 조언이 아니며, 통찰력을 얻게 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 상담가와 내담자의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상담가에게 모든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공감적 이해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친구나 가족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우울증 환자를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인 교회, 친밀한 교제와 소통의 장 제공해야

우울증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이들 중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교회에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 말 처음으로 자살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한 프랑스의 에밀 뒤르깽(Emile Durkheim)은 기독교인들의 자살률이 천주교인이나 유대교인보다 크게 앞서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개신교회가 천주교회나 유대교 모임에 비해 집단적 의례나 공동체 영성 보다 개인적 신앙형태를 강조하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교인들 간의 교류 약화가 지속적으로 지적되면서, 한인 교회들도 셀그룹, 소모임 등을 통해 삶을 나누고 깊이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인 간의 깊은 소통은 우울증의 자연스런 치유에 기여하고 있다. 애틀랜타연합장로교회 어머니 기도모임을 이끌고 있는 유성희 전도사는 “어머니 기도모임에 나오는 여성 중에 20~30%는 우울증을 가볍게라도 앓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삶을 나누고, 함께 어려움을 공유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먼저는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일회성에 그치는 모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자연스런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정소영 박사 역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여성 중에서도 중년 여성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 우울증”이라면서 “특정 연령층에 있는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삶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적극적으로 형성케 해 주는 것이 한인 교회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고 의견을 나타냈다.

잘 드러나지 않아 더욱 치유가 어려운 질병, 우울증. 마음의 감기라 불릴 만큼 쉽게 찾아올 수 있지만 심해질 경우 죽음에까지 달하는 현대인의 복병, 우울증에 한인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