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미군 병사는 지금까지 1만명이 넘는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미국내에서 반전시위는 거의 없다. 1960년대말 베트남전 때와는 사뭇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게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명분'에서 찾는다. 베트남전과는 달리 9·11 테러는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한 것이어서 젊은이들이 진보·보수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총을 들러맸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본 젊은이들이 앞다퉈 군에 입대했다. 이들을 일컬어 미국에선 '9·11 세대'라 부른다. 전사자는 거의 모두 이 세대에 속하는 젊은이들이다. 지금도 꾸준히 군입대 지원자가 늘고 있어 미국은 병력부족사태를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태로 군입대, 특히 해병대 지원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해병대 중에서도 특수부대에 속하는 수색병과는 경쟁률이 무려 21대1에 달한다.

이를 두고 언론에선 "대한민국 젊은이, 그들은 살아있다"며 감동적인 찬사를 늘어놓기 바쁘다. 심지어 "선진국형 애국심으로 진화하는 신선한 현상"으로까지 그려지고 있다.

미국의 '9·11 세대'와 한국의 '연평도 세대'는 이처럼 군입대 증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형 애국심과 한국형 애국심은 근본부터 차이가 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팻 틸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레인저 특수부대 병사다. 전직은 프로미식축구(NFL) 선수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스타플레이어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연봉 500만 달러를 미련없이 포기하고는 자원입대했다. 장교 복무를 권유받았지만 틸먼은 이를 거부, 일등병 계급장을 달았다. 조국이 베푼 은혜를 갚는다며 레인저의 엘리트 유격병사가 된 것이다.

프로야구선수인 그의 동생도 형을 따라 레인저 병사가 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

그동안 명문대 출신들이 꺼려했던 중앙정보국(CIA)에도 지원자가 쇄도했다. 월스트리트의 고액 몸값 유혹을 뿌리치고 박봉에 고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에이전트가 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제니 톰슨은 세계여자수영계에서 '전설'로 불리는 인물. 수영사상 최초로 4회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철의 여인이다.

톰슨은 1992년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애틀랜타, 시드니,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8개를 포함, 모두 12개의 메달을 따냈다. 미국에선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 못지않는 유명 선수다.

톰슨은 원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명문 스탠퍼드를 졸업하고는 뉴욕 컬럼비아 의대에 진학, 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9·11 테러의 참상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톰슨은 학업을 잠시 접었다. 조국의 영광과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 물살을 갈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테러 희생자들과 전사한 병사들의 영전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31세의 나이에 다시 수영복을 입은 톰슨은 아테네에서 2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끝내 그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한국엔 그러나 유명스타들이 북한의 도발에 분연히 들고 일어나 군에 입대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멀쩡한 치아를 뽑거나 정신병력을 이유로 군복무 면제를 받은 연예인들만 있을 뿐이다.

유명 스포츠 선수들도 아시안게임에 나가 금메달을 따기 바빴다. 병역면제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연평도 사태이후 해병대 입대가 늘어나자 "젊은이들이 자발적인 애국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실례"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이는 결코 '선진국형 애국심'은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면제를 받았는데도 이를 반납, 군입대를 하는 유명선수들이 줄을 이어야 비로소 '선진국형 애국심'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현일 기자, 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