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대단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인간이 전능자는 아닙니다. 현대인들의 능력이 더욱 탁월해졌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이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고, 젊고 건강하면 문제를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고, 권력 있고 힘이 있으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문제를 내가 상대하면 결국 내가 흥분하고 혈기를 부립니다. 그러다가 문제해결이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분노하게 되고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 4장에 나오는 아벨은 의로운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열납 되었는데, 형 가인의 제사는 열납 되지 않자 분을 냅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창4:5,6) 잘못은 자기가 하고도 흥분하여 분을 내는 가인은 문제의 원인을 아벨에게 돌려 그를 돌로 쳐서 죽이는 또 다른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흥분하여 비판하는 사람은 언제나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거나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흥분하는 공격적인 사람은 자기 성장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장과 발전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내가 죄인이고 내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자신의 자아를 쳐서 복종하였습니다.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의지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고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이 나타났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진짜 승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가자는 말은 여러 가지로 당장 어렵고 고생스러워 보입니다.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는 말은 편안히 쉴 수 있는 하루를 더 피곤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로만 들립니다. 경건한 생활에 힘쓰고 선한 일에 봉사해야 한다는 말은 내 여가를 더 재미있게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약속대로 드려야 한다는 말은 내 돈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들립니다. 이 땅에서 오로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그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설교는, 요즘 같이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기는 시대에는 도무지 말도 안 될 억지 강요처럼만 들리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불신 세상 쪽에 항복하고 아예 거기 들러붙는 것은 더없이 편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술 담배 하고, 정욕 이끌리는 대로 생활하고, 정말 무엇 하나 거리낄 것 없는 자유와 평화가 불신 세상 쪽에서 기다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사람의 진짜 목숨과 영혼을 노리고 있는 사단이 세상에 던지고 있는 낚싯밥인 것입니다.

‘이 약만 먹어봐 다 나아!’ ‘너를 무조건 출세 시켜 줄게’ 이런 사람들이 다 사기꾼인 것처럼,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주머니 속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문제를 내가 상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인생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이 있고 기도가 있고 생명이 있으면 기본적인 충만함이 있기 때문에 문제에 펄펄 뛰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간 선교지에서나 교회에서 내가 문제를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하는 믿음이 되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