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존재는 어떤가를 생각해 본다.

러시아에도 종종 주일이 공휴일이나 명절과 겹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인사하고 쉬는 날이라고 하여서 어느 현지 교회는 주일예배를 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도록 하는데, 해마다 신정 연휴는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도 성탄절이 주일과 겹칠 경우, 그래서 아주 큰 교회 중, 한 교회는 예배를 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주일예배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우선하였다고 할까? 아니면 파괴되어가는 현대 가정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할까?

세속주의 하나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하나님이 빠져버린, 예배를 생략하고, 가정을 배려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가정과 삶이 조금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을 찾고 인간의 편리에 의하여 예배를 하고 , 안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 예배의 개념이 흐려져가는 것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희박해지는 것이다. 교회 행사시의 예배도 하나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간단 간단히 처리하고, 행사와 놀이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다.

오늘의 신앙인들은 많은 경우에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필요할 때에 찾아와 양초 하나 꽂아 놓고 합장하고 소원 빌고 돌아가는 불교나 정교회나 로마 천주교나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액세서리인 것이다. 물질의 복이나 내려주고, 건강관리 해주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는, 그런 세속주의 하나님인 것이다.

주일에 대한 개념이 현대 신앙인들에게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너무나 신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도 이제는 현대인의 엑세서리가 되어가고 있구나 함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영적인 기호식품이 되어가고 있다. 배고플 때에 라면 하나 퍼뜩 끓여 먹고, 심심할 때 떡볶이 해서 먹는 것처럼 말이다. 평상시에는 가만 있다가 문제 있을 때에 금식으로 한 번 처리하는 그런 것 말이다., 신앙이라는 것도 교회를 다니는 것도, 하나의 치장거리를 하는 것처럼, 장신구를 달고 다니면 조금 보기 좋고 아름답게도 보이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그대로 신앙이 정신적인 사치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신앙을 갖지 않으면 왠지 소외당하는 것 같고, 허전하여 무슨 종교든지 하나 가져야 하겠는데, 기왕이면 대중적이고 지성적이며 신사적인 종교를 선택하여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여 기독교를 선택하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숫자만 채우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러한 성도들을 탓할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교회나 미국의 대형교회가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대치하고 공동예배를 하지 않는 것은 그 교회의 지도자의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책임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생 되기를 좋아하지 말라 하셨다.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잘못 감당하고 잘못 가르쳐 소경의 길로 인도한다면,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열심히 가르쳐도, 성도들은 교회의 모임이나 예배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회만 있으면 벗어나려고 하는 게으르고 죄된 성품이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커서 공휴일과 겹쳤다고 편안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배려한다는 것은 무언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 아닐까?

훈련이 잘 되었든지 그렇지 않든지 평신도 가정에서 바른 예배가 진행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나는 현지에서 학원이나 다른 교육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가정에서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가정 예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녀를 말씀으로 교육시키면서도, 지속적으로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며칠은 잘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생각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필요를 따라서, 멋을 부리기 위하여 귀에 걸고 손목에 걸고 다니는 액세서리처럼,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소홀히 하여, 하나님을 경멸이 여기는 자를 하나님은 두고 보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바른 생각 바른 가르침 그리고 영의 일은 영으로 분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잠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Sergei(모스크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