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중에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신히 아기를 재워놨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됐다.’ 또는 ‘컴퓨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그동안의 작업이 말짱 도루묵이 됐다’ 등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언뜻 들으면 무슨 도토리묵과 상관이 있을 듯싶지만 여기서 '묵'이란 '목'이란 말이 와전된 것으로 목어(目漁)라는 물고기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길에 오른 선조 임금이 몹시 시장기를 느꼈고, 마침 마을 백성 중 한 사람이 잡아 온 생선을 구워 임금님께 수라로 올렸습니다. 사실 그 생선은 맛이 별로 없어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잡아도 그냥 놓아주던 물고기였습니다. 하지만 몹시도 시장했던 선조 임금은 그 생선을 맛있게 드신 후에 생선의 이름을 물으니 신하가 ‘묵’이라 대답을 하였고, 선조는 맛에 비해 이름이 보잘것없으니 이름을 바꾸라며 생선의 배가 은빛으로 빛나니 ‘은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그 맛을 잊을 수 없던 선조는 다시 은어를 찾았는데, 맛이 예전 같지 않자 “이 생선이 예전의 그 생선인가?”라며 “그렇다면 이 맛없는 생선을 도로 묵이라 하라”고 해서 ‘도로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도로묵’은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사람들이 발음을 편리하게 하다 보니 ‘도루묵’으로 변했고 지금은 ‘도루묵’이라는 말을 표준어로 삼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말 중엔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정말 배가 고플 때에 오래 되어 말라비틀어진 떡도 꿀맛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배불러도 사람들은 먹기 힘든 딱딱한 떡은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곧 내다 버리고 맙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인생들을 생각해 봅니다. 본래 우리 인생들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천국의 백성답게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5:13)고 하시며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아니라”며 세상 구석구석에 들어가 소금과 같이 녹아져 맛을 내는 존재들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하시며 그러기에 “그 빛으로 인해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어 온 집안을 비추게 하듯이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가르치셨음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목어 같던 인생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은어처럼 고상한 이름을 주시며 거룩한 존재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맛을 잃어버린다면 도루묵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마티(마이클 제이 폭스)가 드로리안을 타고 과거로 미래로 바쁘게 오가면서 시간을 한없이 늘려보고 세워보고 거꾸로 되돌려 보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 보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나 결국 그가 한 일은 자기가 흩트려놓은 질서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 전부였음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를 속되게 이를 때 ‘말짱 도루묵’이라 표현합니다.

진정 말짱 도루묵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 주신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힘닿는 대로 더욱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맛깔스런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